돌아오지 않는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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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숲 그란플로리스에는 여러 종족이 어울려 살고 있다. 아라드가 생겨날 때부터 살아온 지혜의 종족 요정과 거대한 몸집에 걸맞은 힘을 가졌으며, 순수하지만 현명한 타우가 대표적이다.
그들은 힘을 합쳐 마이어가 만든 대마법진을 지키며 평화로이 살고 있었다. 가끔 찾아오는 불청객도 있었지만 숲이 이들을 아끼고 보호했기에 작은 소동 수준에만 그칠 뿐이었다.
그렇게 조용한 나날이 이어지던 어느 날. 모든 짐승의 왕이라는 칭호를 가진 위대한 타우의 왕, 움타라는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누군가를 찾고 있었다.
여기 있었군. 찾았다네.
그가 찾던 사람은 다름아닌 요정의 장로였다. 요정끼리는 서로 마법의 기척을 통해 쉽게 찾을 수 있지만 마법에 무지한 움타라로서는 직접 찾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안녕하세요 움타라 님.
오랜만이군요. 수왕이여. 나에게 볼일이 있습니까?
음. 조금 걱정되는 게 있어서 의논을 하러 왔네.
숨기는 것 없이 직설적으로 말하는 타우가 어울리지 않게 말을 돌리는 것을 보고 요정 소녀가 눈치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참, 책을 돌려주러 가야하는데 깜박했네요. 장로님, 움타라 님.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미안하군.
아니에요. 저는 괜찮으니 말씀 나누세요.
요정의 밝은 귀로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소녀가 멀리 가고 난 후에야 장로가 조용히 물었다.
그래, 무슨 일입니까?
요즘 바깥에서 인간들이 많이 들어오고 있네. 모험가나 여행객까진 상관없지만 쇠로 온몸을 감싼 놈들이 서성이는 게 신경이 쓰여.
그 문제라면 나도 알고 있습니다. 무슨 일이 있을지 모르니 궁수들을 더 배치해 놓을 참입니다.
음. 요정들도 경계에 나서준다면 우리도 한결 편해지겠지. 그런데 그 인간들은 도대체 뭐하는 자들이지?
움타라의 목소리에는 경계의 기색이 깃들어 있었다. 이치를 따져 설명하지는 못하지만, 수왕답게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탓이리라.
군인인 것 같더군요. 정확히 무엇이 목적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조사를 하고 있는 듯했습니다.
대마법진에 손을 대려는 건 아니겠지…
그란플로리스 숲을 둘러싼 대마법진은 인간이지만 요정조차 존경하는 대마법사, 마이어가 그의 모든 마력을 쏟아서 만든 것이다.
삶의 터전을 자꾸 늘리려는 인간의 횡포에 쫓겨난 요정들이 지금처럼 숲의 종족으로 남아있을 수 있는 것은 그가 만든 마법진이 이 그란플로리스를 수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란플로리스는 요정들에게만 중요한 곳이 아니었다. 오래되고 광대한 숲은 많은 짐승들과 나무들이 자라는 곳이다. 아라드 전체의 생태를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럴 리가요. 마이어 님의 마법진이 무너지면 그들 역시 큰 피해를 입게 될 텐데, 아무리 생각이 짧다고 해도 자멸하는 짓을 하지는 않을 겁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만 인간들은 전부터 이 숲을 파괴하고 약탈해 왔네. 아라드를 가득 채운 많은 인간들 중에 정상적인 사고가 불가능한 녀석이 없으리라고 볼 순 없어.
그러니 경계를 하고 있는 것이지요. 그리고 요정뿐 아니라 강인한 타우도 이곳을 지키고 있습니다. 우리가 힘을 합쳐 주의를 계속 기울인다면 우려하는 사태가 벌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나도 그러길 바라네. 하지만 왠지 예감이 좋지 않아… 아니, 관두지. 요정 앞에서 예감이 어쩌고 하는 말을 꺼냈다간 부끄러워질 뿐이니.
움타라는 그렇게 말을 끝내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애용하는 거대한 망치를 들어올렸다. 인간이나 요정이라면 몇 사람이 덤벼들어도 까딱하지 못할 테지만 그의 힘이라면 가볍게 들어올릴 수 있었다. 요정의 장로는 그 엄청난 힘에 순수하게 감탄했다.
그럼 이만 순찰을 돌러 가봐야겠어. 그 군인들 말고도 엉뚱한 짓을 벌이는 놈들이 있을지도 모르니까. 이번에는 숲 외곽을 중점적으로 돌아볼 생각이네.
긴 여정이 되겠군요. 모쪼록 무사히 돌아올 수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고맙군. 그럼 나중에 보도록 하지.
요정 장로는 움타라의 거대한 몸이 나무들 사이로 사라져가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이 조용한 숲은 타우의 왕마저 작아보일 정도로 크고 오래된 나무가 가득하다. 인간들이 아무리 수를 써도 타우와 요정이 지키는 한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것 역시 인간들이다. 요정의 지혜로도 예측할 수 없는 그들의 돌발적인 행동은 언제나 당혹스럽다.
젊은 요정들은 인간을 대상으로 전쟁을 일으켜야 한다고 말하지만, 혈기 탓에 무모한 소리를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아라드를 지배하는 종족을 상대로 수가 적은 요정이 이길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모든 종족의 평화와 공존을 바랐던 마이어처럼 인간들이 조금만 더 먼 미래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요정의 안위를 위해서가 아니다. 이 그란플로리스 숲은 아라드를 위해서 꼭 필요한 곳이다. 이곳마저 습격받아 대마법진까지 파괴되었을 때 일어날 일은 상상도 하기 싫었다.
한번 파괴된 숲은 다시는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요정 장로는 숲과 아라드를 위해 움타라의 불안이 현실로 일어나지 않기만을 기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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