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0월 14일 토요일

엔피시 대사집 - 다크 페이퍼 (공포의 은신처)

<1번째 쪽지>
...그 사고 이후로 열이 계속 나고 있다. 머리도 울리고 속도 좋지 않아 몇 끼나 굶었다. 그런데도 배가 고프지 않아서 이상하다. 그것 빼고는 걱정만큼 아프지 않아서 다행이긴 하다. 좀 지나면 나아지려나.
(중간에 몇 장이 훼손되어 있다.)
낮에 칼에 손가락을 베여서 나도 모르게 피를 핥았는데, 그 후로 계속 피의 짭짤한 맛이 생각난다. 왜 이러는 걸까.
이제는 옆에서 자는 동생을 쳐다봐도 붉은 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이상하다. 미쳐가는 걸까.
무섭다. 동생의 피 맛이 너무 궁금하고, 이런 내가 너무 무섭다.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2번째 쪽지>
도저히 이성을 유지할 자신이 없어서 마을을 나왔다. 어디로 가야하지. 이럴 줄 알았으면 마법이라도 제대로 익혀둘걸. 재능이 없었으니 무리려나.
그 아이가 있는 곳으로 가서 도움을 받을까 싶었지만, 돌풍지대를 넘어갈 방법이 없다. 멀리 돌아가려고 해도 그동안 내가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는 보장이 없고...
그래서 공포의 은신처로 가기로 했다. 내가 정말 미쳐버려도, 거기 있는 괴물들이 날 밖으로 못 나가게 할 테니.



<3번째 쪽지>
한 글자를 쓰고 넋이 나갔다가, 한참 지나고 나서야 겨우 한 글자를 더 쓰고 있다. 집에 가고 싶다. 집에 가서 동생의 뺨을 만지고 싶다. 가족의 온기를 느끼고 싶다.
하지만 갈 수 없다. 가면 안 돼. 가면...
처음엔 확신이 없었지만 이제 안다. 나는... 한 손만으로도 마을 사람들을 모두 죽일 수 있다. 이곳에 와서도 괴물들이 나에게 덤벼들지 못한다.
차라리 죽여줘. 죽여줘.



<4번째 쪽지>
...이름을 바꿔야겠다. 내 이름이 괴물의 이름이 되어버리는 건 싫다. 예전에 애들이 놀면서 내 이름의 철자를 섞어서 뭐라고 했었는데... 그 이름이 떠오르면 그걸로 써야겠다.
이곳의 주민들이 내 원래 이름을 부르게 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내 이름이 잊히는 것도 싫어. 도와줘...
(중간에 몇 장이 찢겨 있다.)
집에 가고 싶어. 난 이름을 버리지만... 제발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줘.
나 아직 살아있어. 제발...



<5번째 쪽지>
...가고 싶어. 집에... 하지만 가면 안 돼. 가고 싶어.
가면 안 돼. 가고 싶어. 가면 안 돼.
집에가고싶어가고싶어가고싶어가고싶어가고싶어가고싶어집에가고싶어가고싶어가고싶어가고싶어가고싶어가고싶어.
안돼안돼안돼가면안돼안돼안돼안돼안돼집에가고싶어가고싶어가고싶어가고싶어가고싶어가고싶어안돼안돼안돼가면안돼안돼안돼안돼안돼안돼안돼안돼.
배고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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