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를 저버린 라르고
주요 스토리
비록 반쪽뿐이지만, 이 모습을 드러낸 것도 얼마 만이지.
이 백해의 물웅덩이에 이렇게 요괴가 아무렇지 않게 얼굴을 비추고 있는 걸 감시자들은 알려나.
언제였더라... 누구한테 왜 흰 구름 감시자가 되었냐고 물었는데.
"사랑하는 고향과, 모두가 천 년 동안 지켜온 믿음과 신념. 그 정신에 감명받아서 감시자가 되었죠."
그리고 나는 뭐라고 했었지.
"여행을 하다가 감시자들에 대해 알게 된 후, 그들과 같은 마음가짐으로 살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들어온 것이거든요."
맞아. 그렇게 말했었지. 하지만 내가 정말 그랬을 리가 없잖아. 날아가던 나부가 웃겠어.
하긴, 천 년이라는 시간 동안 오지도 않을 손님을 미련하게 기다리려면, 그렇게 소중한 '조화'를 지키려면...
그 허황된 마음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
믿음이라.
번번이 내가 놓은 덫인 줄도 모르고 도와줘서, 구해줘서 고맙다고 하는 감시자들의 마음. 그 우스운 것일까.
자신들이 어떤 선택을 자초하는지도 모른 채, 이 손을 잡고 장막을 드리우면서, 그게 안개신을 위한 것이라 말하는 그 사제의 마음일까.
어느 쪽이든 눈앞의 불안정한 수면과 같으니
내 손짓 한 번이면 흐트러질 것이며, 그렇지 않아도 흐트러질 것이다.
난 그 순간을 이용하고 즐기면 그만이다.
"라르고님! 어디 계십니까!"
이제 다시 그 어리숙한 광대로 돌아갈 시간인가.
그래, 나부. 내 귀여운 신수도 잊으면 안 되지.
"하핫. 미안해요. 잠깐 나갔다 오느라... 제가 또 구경거리 생기면 못 참는 성격이잖아요."
"에를리히 님으로부터 전령입니다!"
"에를리히가?"
블루호크와 동행하고 있는 수상한 사람들이 계곡으로 오고 있다.
또 어리석은 인간들인가? 아니면 설마 정말 그 손님이라도 온 건가?
누구든 상관없다. 이미 저 어둑한 섬으로부터 그분을 위한 계획은 시작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만약을 위해 마중이라도 나가볼까.
+ 추가 스토리
거대한 돌이 손톱만 한 균열에 끝내 산산조각 나듯,
오히려 강한 신념을 가진 자들을 속이는 건 쉬운 일이 될 수 있었다.
그들은 그 신념을 위해서라면 눈앞에 보이는 것이 무엇이든 손을 잡으니 말이다.
라르고는 클라디스가 그런 자라는 걸 한눈에 알아봤다.
그래서 유흥의 껍데기에 불과한 흰 구름 감시자로서의 모습이 아닌 신의를 비웃는 본래의 모습을 일찍이 드러냈다.
환란의 라르고
주요 스토리
온몸이 찢겨 타들어 가는 듯한 고통을 넘어
집어삼킬 듯 요동치는 물길을 거슬러
마침내 이곳까지 왔다.
숨을 토해내니 하얀 안개로 뒤덮인 땅이 시야에 들어찼다.
고통과 아픔 따위 없는 세상.
환란의 땅과는 모든 게 반대되는 세상.
이곳에 서서히 녹아들어 그들이 누리는 모든 것들을 더럽힐 생각을 하니
어느 것과도 견줄 수 없는 희열이 뱃속부터 치솟는다.
상처받고 찌르고
외면하고 배신하기를 반복하는
끝없이 서로를 구분해 온 인간들이
가슴 깊이 숨겨온 추악한 위선.
이제 곧 거짓된 마음들이 수면 위로 올라오겠지.
그런 생각을 하니 웃음이 멈추질 않는다.
어쩌면 내가 마땅히 할 일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그들이 지니고 있는 악함을 한층 더 끌어올리면 그뿐.
그들이 서로를 저버리는 사이,
지금껏 누려왔던 세상은 아주 깊숙한 곳에서부터 썩어가고 있을 것이다.
+ 추가 스토리
끊임없는 고통과 절규, 짙은 피비린내와 지워지지 않는 혈흔.
사는 것보다 죽지 않는 게 우선인 삶이었다.
요괴의 삶이란 본래 그런 것이었다.
어렸던 그는 이를 악물고 피눈물을 흘렸다.
그런 그에게 눈을 맞추고 손을 내민 자가 있었다.
더 이상 그의 마음엔 어떤 고통도 괴로움도 남지 않았다.
그는 다짐했다.
자신을 살게 한 이를 위해 모든 걸 바치겠다고.
그에게 처음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가 생겼다.
불신위괴 라르고
주요 스토리
"크으윽... 크윽……"
라르고는 뒤틀리는 사지를 겨우 부여잡았다.
단전부터 올라오는 강력한 힘이 사정없이 요동쳤다.
휘몰아치는 힘만큼 고통 또한 극심해졌다.
라르고는 묵직해진 몸을 바로 세웠다.
이내 괴로움 섞인 이명이 지상에 울려 퍼졌다.
그의 뒤편에 검보랏빛 요기가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었다.
붉은빛과 푸른빛을 띤 기운이 요기를 감싼 채 일렁이기 시작했다.
쿠쿵-
결국 그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감시탑에 커다란 균열이 일었다.
갈라진 틈 사이로 생긴 잔해가 사방에 흩날렸다.
라르고는 잔해가 잦아들자 고개를 들었다.
저 멀리 그들이 보였다.
안개 너머 바깥 세계에서 왔다는 자들.
“…멍청한 것들.
이보다 더한 것도 준비했는데 말이지.”
라르고는 조롱 섞인 웃음을 지어 보였다.
“발길 닿는 모든 곳이 환란의 땅으로 통하는 길임을 알려주지.”
그는 말을 마친 후 온 힘을 다해 공중에 몸을 날렸다.
강력한 힘의 파동으로 인해 공간이 잠시간 일그러졌다.
그가 떠난 자리를 따라 짙은 요기가 퍼져갔다.
+ 추가 스토리
배신과 음모에 능한 자.
하지만 계획이 틀어지면 곧바로 극악무도하게 변하는 자.
환요오괴 중 하나인 마흐나발은 문득 라르고를 떠올렸다.
자신과 함께 그분의 명령을 가장 먼저 받들었던 자였기에.
과연 어떤 소식과 함께 다시금 환란의 땅에 발을 들일지.
마흐나발의 입가에 잔혹한 미소가 감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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