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연의 특별취재 #1 보랏빛 밤
블루호크의 청연 습격, 아스라한과 무의 눈 내부의 분란...
어둑섬에서 일어난 비극과 안개신의 폭주, 무의 눈 제사장의 죽음.
이 모든 사건은 각각 우연히 일어난 것이 아닐 것이다.
모든 것의 중심에 있는 건... 바깥 세계에서 온 사람들, 그리고 모험가라 불리는 자.
모험가의 등장과 그 이후 백해에서 벌어진 일들은 전부 우연이었을까?
그리고... 그것들은 지금 중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
나는 지금부터 이 지면을 통해 최근 중천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원인 불명의 사건들을 기록, 연재하고자 한다.
아직은 백해에서의 일들과 이 사건들이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는 밝혀진 바 없으나, 누군가 조사하고 기록하지 않으면, 다가올 어떤 것에도 대비할 수 없을 테니까.
이 연재가 얼마나 이어질지는 알 수 없지만, 내가 보고 들은 것들을 사실 그대로 옮기고자 한다.
우선 모든 것의 시작은 지금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마을에서부터다.
"생각보다 더 심각한 상태야."
이곳은 최근까지도 '약속의 도시, 이내'로 향하는 관문 중 하나로써 이곳에 오랜 기간 터를 잡고 살아온 정비공들과 그들의 가족. 또 이곳을 거쳐 가는 상인들과 여행자들로 인해 활기가 넘치는 마을이었다.
하지만 어느 날부터 이곳을 경유해 이내로 들어오는 비공정들이 자취를 감추었고, 곧이어 이내의 상인들 사이에서는 하룻밤 사이에 모든 것이 사라진 마을에 대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괴이한 소문은 금세 사실로 밝혀졌다. 이내의 조사단이 마을에 파견되었고, 조사단은 그곳에서 어떤 생명의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조사단은 텅 비어버린 마을의 풍경으로부터 '원인 불명의 집단 실종' 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마을 곳곳엔 여전히 삶의 흔적들이 남아있다.
정비를 채 끝내지 못한 소형 비공정과 그 주변으로 펼쳐져 있는 정비공의 공구들,
아이들이 가지고 놀았을 작은 기계장치들과 여전히 마을 외곽을 따라 흐르고 있는 미스트 송수관.
머무는 이도, 찾는 이도 없지만 불을 밝히고 있는 주점과 비어버린 신수들의 둥지.
이 마을이 간직했을 모든 삶의 장면에서 오로지 생명체의 존재만이 사라져버린 모습이었다.
모든 풍경이 가리키는 진실은 오로지 하나뿐이었다.
'이곳의 사람들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동시에 사라졌다.'
마을 어디를 둘러봐도 같은 풍경의 연속이었다. 그저 누군가 머물렀던 흔적과 그로부터 유추할 수 있는 건 긴박한 당시의 상황들뿐이었다.
아마도 이내의 조사단은 이 지점에서 조사를 멈추었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 전 유랑 본부로 도착한 익명의 편지, 그 편지의 내용이 나를 이곳을 첫 번째 실마리가 있는 곳으로 확신하게 했다.
편지의 내용에 따르면 이 마을엔 사람들이 사라져가는 그 순간에도... 유일하게 살아남은 '생존자'가 있다.
마주 앉은 남자는 깊은 로브를 뒤집어쓴 채 나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처음 내가 남자의 집 문을 두드렸을 때, 그는 절대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숨기고자 하였다. 긴 설득 끝에 나와 마주 앉은 순간에도 그는 극도로 긴장한 모습을 내보이고 있었다.
집 안으로 나 있는 모든 창을 집기들을 이용해 틀어막은 형태가 남자의 극도로 불안한 감정을 대신 말해주는 듯했다.
마치 병적으로 빛을 거부하는 듯한 모양새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활기가 넘쳤을 마을. 이 남자 역시 그 속에서 자신의 삶을 일궈나가며 평범한 삶을 살아왔을 것이다.
무엇이 평범한 한 사람을 이렇게나 망가트린 걸까? 이 남자는 그날 무엇을 보았고, 왜 숨어버렸을까? 여러 가지 의문들이 차올랐지만 나는 그저 기다리고 있었다.
다섯 뼘 남짓한 작은 탁자를 사이에 둔 나와 그 사이에 무거운 침묵이 내려앉았다.
긴 침묵의 끝. 이윽고 입을 뗀 남자의 목소리는 자신의 상태를 대변하듯 예민하고 나약하게 공간에 울려왔다.
"어떻게... 어떻게 나를 찾아온 거지?"
"익명의 제보를 받았습니다. 누군가 이곳에 남겨진 생존자가 있다고 편지로 유랑 본부에 알려왔죠."
남자는 가파른 숨을 내쉬며 몸을 떨어댔다. 테이블 위로 간신히 올려둔 메마른 양손으로 자신의 손톱 따위를 계속해서 뜯어내었다.
그가 느끼는 불안은 목소리에 그대로 전해져 있었다.
"유랑? 그럼 당신은 천해천에서 온 것인가... 그리고 편지라면,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을... 누군가 알고 있다는 건가?"
"역시... 그자가 분명해. 이런... 이제 날 죽이러 올 거야, 왜지? 왜 그때 날 죽이지 않고 이제서야... 왜..."
"어째서 다시 나를 죽이려고 하는 거지? 왜? 난 아무것도 보지 못했는데 왜? 왜 날 죽이려고 하는 거야..."
그는 누군가 자신의 존재를 인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뒤부터 눈앞의 나의 존재는 망각하고 있는 듯했다.
끊임 없이 이어지는 그날의 기억과 그로 인해 새겨진 공포심이 아마 남자의 머릿속을 터져라 휘젓고 있을 터였다.
난 남자의 손을 붙잡았다. 천천히, 조금씩이나마 남자의 몸의 떨림이 멈추는 것이 느껴졌다.
오랜만에 느끼는 사람의 온기가 안정을 가져다준 것일까? 남자는 자신을 집어삼킬 듯 휘감아오던 감정에서 벗어난 듯 보였다.
"힘들겠지만,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주실 수 있나요?"
또 다시 한동안 침묵하던 남자는 무언가 결심한 듯 떨리던 양손을 탁자 아래로 내리며 자세를 가다듬었다.
뒤이어 메마른 목소리로 자신이 겪은 일들을 들려주었다.
"...그 날도 그저 똑같은 하루였네."
"상인들의 비공정을 봐준 뒤에 다른 날보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 다음 날 아침 일찍 그들을 배웅해야 했거든."
"비록 내가 다시 아침을 맞이하는 일은 없게 되어버렸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있었던 거죠?"
"그저 나는... 사라진 가족들을 찾아 집을 나섰을 뿐이야. 잠에서 깬 뒤에 가족들이 모두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되었네."
"놀란 나는 아내와 딸을 찾기 위해 난 집 밖으로 뛰쳐나왔고,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내 가족을 찾을 수 있었지."
"...이 곳을 찾아오면서 마을의 광장을 보았는가?"
"제가 본 게 맞다면, 마을 사람들은 모두 그곳에 모여있었을 거에요. 광장에서 가장 많은 흔적을 봤죠. 누군가의 신발, 남겨진 옷가지들이 널브러져 있었거든요."
"그래. 제대로 봤군. 내 가족을 포함해서 모든 사람들이 광장으로 모여들고 있었네, 하지만 아무리 불러도 나를 봐주지 않았어."
"마치 뭔가에 전염된 것처럼 다들 제정신이 아니었네. 그저 그들은 어떤 것에도 반응하지 않고 광장의 중심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을 뿐."
"나는 목이 터질 듯 아내의 이름을 부르고, 딸의 팔을 붙잡았네, 하지만 아무 소용없었어. 마치 나만 그들의 세상에서 차단된 듯했지."
"그리고 그들은 계속해서 끊임없이 광장으로 걷기만을 반복했다네."
"곧 이어 모든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을 때, 나는 그 빛을 봤네."
"빛이라면 어떤 걸 말하는 거죠?"
"모든 사람들이 모인 순간 그들은 걸음을 멈췄네. 그리고 곧 깊고 어두운 보라색의 빛이 광장을 뒤덮었다네."
"순간적으로 퍼지는 빛과 함께 나는 정신을 잃었다네, 그리고 그 순간에도 딸의 팔을 놓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정신을 차린 내 손에 쥐어져 있던 것은 딸이 아닌 고작 이따위 나무토막이었다네."
남자는 무언가를 꺼내 보였다. 그것은 나무토막이 아니었다.
사람의 뼈. 그것도 어린아이의 것으로 보이는 작고 가느다란 뼈였다.
나는 남자가 왜 이것을 나무토막이라 믿고 있는지 의문이 들었지만, 곧 그 답을 알 수 있었다.
"아까 누군가 당신을 죽이려 한다고 했었죠? 혹시 그날 그자를 본 건가요? 얼굴이라도 기억하고 있다면..."
"그자의 얼굴?"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이런 상태였네."
"나도 묻고 싶네. 왜 나만 살려둔 건지! 난 아무것도 보지 못했는데 왜 두 눈을 멀게했는지..."
"그자가 누구인지, 왜 이 마을에 왔는지, 또 왜... 내 가족을... 그렇게 했는지... 나는 모르네."
"그저 내가 봤던 건 보랏빛 섬광과 동시에 들려온 목소리뿐인데 말이야..."
"그 목소리는... 무언가 이곳에... 선계에 찾아올 것이라고 말했네."
"이봐요. 뭐라고요? 누가 찾아온다는 거죠?"
아마도 남자는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다시금 공포감에 빠져든 것으로 보였다.
난 더 이상 남자와의 대화가 불가능한 상태라고 판단. 이 마을에서의 취재를 마치기로 했다.
무엇하나 해결된 것은 없지만 약간의 실마리를 얻었다.
'의문의 보랏빛 섬광.'
최근 중천 곳곳에서 이와 관련된 목격담이 이어지고 있었기에, 모든 것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는 확신이 생겼다.
다만 도무지 찝찝한 기분이 가시지 않았다.
어린 아이의 뼈를 붙잡고 나무토막이라 말하는 남자는 그것이 자신의 딸이라는 걸 알고 있었을까?
아니면 그저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그리고, 남자에게 선계로 찾아올 것임을 암시했던 목소리.
이 사건의 원인인 그 존재는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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