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줄곧 생각하고 있었다.
온몸이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갈기갈기 찢어졌다.
조각난 육체에 남아있는 신경들은 끔찍하게 꿈틀거리며,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느끼게 했다.
불사의 육체는 저주처럼 들러붙어, 죽음이라는 안식으로 들게 하지 못했다.
그것은 생각했다.
이대로 죽음이 자신을 데려가 평온을 주면 좋겠다고.
하지만 육체는 그를 잡아 두었다.
시간이 지나 찢어진 육체가 돌아오기 시작했다.
그것은 다시 생각했다.
이대로 회복 되어 예전의 모습을 되찾으면 좋겠다고.
하지만 차원은 그의 육체에 끔찍한 고통을 심어 놓았다.
그것은 생각했다.
이 끔찍한 고통이 끝나고 모든 힘을 되찾으면,
자신이 느낀 이 모든 고통을 되돌려 주겠다고.
지옥보다 더 끔찍한 차원 속으로 몰아넣은 이 모든 세상에 같은 고통을 주겠다.
그렇게 조금씩, 천천히.
그것은 차원의 폭풍 속에서 눈을 뜨고 있었다.
적응하는 자고스 (Adaptional Jhaggoth)
조각은 고체도 액체도 아니었다. 그저 흐믈거리는 무언가였다.
그것에서 떨어져 나왔을 때 형태를 갖추었을 뿐이었다.
차원을 떠돌면서 삼켰던 것들에서 자아를 얻어냈을 뿐이었다.
그 밖의 것은 없었고, 그렇기에 불완전한 존재로 흘러 다녔다.
그럼에도 적응하듯이 떠돌았고, 삼키고 삼키며 자신을 완성하려 했다.
하지만 그렇게 했음에도 완전해지지 못했다.
흐리멍덩한 자아는 의문을 품었고 완전해지지 못하는 이유에 고뇌한다.
그러다 그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저 멀리 차원의 폭풍 너머에서 강렬하게 자신을 부르고 있는 어떤 목소리.
그것은 그에게 이리 오라 부르고 있었다.
거부할 수 없는, 아니 거부할 이유가 없는 부름이었다.
그는 흐믈거리는 몸을 일으켜 목소리가 들려오는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것을 만나는 자신은 완전해질 수 있으리라.
그렇게 생각하며, 처음부터 지금과 같이 모든 것을 삼키며 앞으로 나아갔다.
"오라, 나의 가장 강력한 조각이여, 이곳에서 너와 함께 완전해지길 바라노라."
- 검은 마물의 편린
붉은 짐승, 슈브라스 (Shubrath, A Red Beast)
차원 속에 떠돌던 소용돌이 치는 기운들이 육체를 휘감아 찢어지는 고통을 주었을 때,
그것의 육체는 조각났고, 안에 머물던 붉은 액체는 오갈 데 없이 차원 안으로 흘러내렸다.
붉은 짐승은 그때 갑자기 태어났다.
차원 속에 흘러내렸던 붉은 액체와 같은 색의 몸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것이 머금고 있던 수천 가지 기운 중 일부를 나누어 가졌다.
붉은 짐승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직여 차원을 떠돌았다.
그것을 찾기라도 하는 듯이 수많은 시간 속을 누비고 다녔다.
붉은 짐승은 머무는 곳마다 재앙을 일으켰다.
한 발을 딛을 때 붉은 액체가 솟구쳤으며, 한 발을 디뎠을 때 하늘이 붉게 물들었다.
셀 수 없는 생명을 붉은 하늘 아래서 거두어갔다.
그러다 문득 붉은 짐승은 재앙의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이제와 마찬가지로 생명을 거두던 어느 때,
하늘을 향해 울부짖은 붉은 짐승은 모습을 감추고 차원을 넘어 사라졌다.
무언가가 자신을 부르기라도 한 듯이.
자신이 찾던 그것을 찾기라도 한 듯이.
흉터로 기억되는 자 (A man, Remembered as a Scar)
기억이 희미했다.
오래전 언젠가 어느 장소에서 어떤 것과 마주하고 그걸 갉아먹으려 했다.
하지만 처참하게 패배하고, 그것의 기운에 잠식되어 몸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감각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천천히, 그리고 조용히 눈을 감았던 기억이 있다.
희미한 기억 속에서 그는 '무언가'로 불렸다.
그리고 다시 깨어났을 때, 그 '무언가'로 불리고 있었다.
그는 자신을 지칭하는 '무언가'에서 증오와 분노, 그리고 집착을 느꼈다.
그것이야말로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고 다시 깨어난 이유라는 걸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는 희미한 기억을 더듬기 시작했다.
'무언가'에서 느껴지는 증오와 분노, 집착을 되짚어가며 근원을 찾아갔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천천히 기억의 냄새를 맡던 그는 '무언가'에 대해서 깨닫는다.
아주 먼 기억 속에 자리 잡은, 살아생전에 자신을 지칭하던 그 단어.
흉터.
그는 그렇게 기억되던 자였다.
더러운 별의 공작 (Duke of Waste Star)
죽을 운명이라 하더라도 쉽게 죽지는 않는다.
수천 년의 시간 속에서 이런 날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거대한 역사 속 어느 한 켠에 기록될 운명이라 생각했지만,
그건 틀렸다.
더러운 육신은 손쉽게 사그라들었다.
살아온 수많은 시간은 무의미했고, 한 가닥의 의미조차 없었다.
쓰러져 부스러지는 순간 역사는 소멸했고, 운명은 멈추었다.
이제는 틀리지 않는다.
육신은 더러운 땅에서 자라났고, 그분이 주신 의미가 영혼이 되어 깃들었다.
소멸한 역사의 부스러기를 태워 멈춰버린 운명을 다시 움직일 것이다.
바로 이 더러운 땅 위에서 새로운 이름을 가지고서.
[검은 차원] 먼 곳에서 불어오는 바람
안녕하십니까, 모험가님. 공국의 의장, 산토리니라고 합니다. 모험가님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겨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최근 들어 팔로만에 불어오는 심상치 않은 바람과 저 폭풍과 관련된 일입니다.
괜찮다면 저와 함께 가주시겠습니까? 자세한 내용은 여왕님께 보고드리며 설명 드리겠습니다.
산토리니와 함께 헨돈마이어 시청으로 향하기
<퀘스트 완료>
산토리니, 돌아왔군요! 그리고 모험가까지?
도움을 주실 분이라 생각되어 모셔왔습니다. 차라도 한 잔 대접하며 상황을 말씀드리고 싶지만, 그럴 여유가 없는 게 안타깝군요.
수고했어요. 팔로만의 상황은 어떤가요?
분부대로 먼저 마가타를 타고 팔로만의 상황을 살피고 왔습니다. 솔직히… 생각했던 것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하더군요.
규모는 크지 않지만 적지 않은 수의 균열들이 팔로만 바로 근처까지 퍼져있었습니다. 최근 팔로만의 무역항로에서 선박들이 사라졌던 일들도 아마 그 영향이 아닐까 싶습니다.
팔로만… 조안 페레로의 제보가 사실이었군요.
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그게 아니겠죠? 낙엽은 모두 뿌리로부터 나오는 법이니까요.
예, 실력 좋은 흑요정 조종사들 덕분에 마가타를 타고 폭풍 근처까지 다가갈 수 있었습니다.
마법사들의 보고대로 폭풍은 발생했을 때보다 더욱 거대해져 있더군요. 흑요정들의 말에 따르면 최근 폭풍에서 느껴지는 차원의 기운이 한층 짙어졌다고 합니다.
흑요정들이 한 말이라면 틀림 없겠네요. 차원과 마법에 대한 지식이라면 우리보다 그들이 훨씬 뛰어나니까요.
특히 폭풍의 중심부는 육안으로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로 균열이 심해져 있었습니다. 마법에 대해 잘 모르는 제게도 느껴질 정도로 이질적인 기운이 가득 차 있더군요.
갈라진 틈 너머로 다른 세상이 펼쳐지기라도 한 것처럼 말입니다.
[검은 차원] 폭풍을 견디는 배
혹시나 했지만 가장 듣고 싶지 않은 말이군요. 어째서 계속 이런 일들이…
여왕님은 누구보다 잘하고 계십니다. 다만… 앞에 놓인 상황들이 좋지 않은 것 뿐이지요.
고마워요, 제가 약한 모습을 보였군요.
산토리니, 프리스트 교단에 보낼 서신을 준비해주세요. 힘들더라도 폭풍 안으로 들어갈 조사단을 준비해야겠어요.
빠른 결단에 감사드립니다. 그렇다면 대규모의 인원를 운송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겠군요. 그것도 폭풍을 견딜 수 있는 크고 튼튼한 배가 말이죠.
모두의 시선이 창 밖을 향했다.
어둑해진 밤하늘을 헤치며 날고 있는 천계의 비공정, 에를록스가 보였다.
시청 안을 채운 무거운 정적 속에서 그것은 어둠을 가르는 한줄기의 빛처럼 보였다.
'에를록스'라고 했던가요? 마가타를 타고 지나갈 때 스치듯 본 게 전부입니다만, 세인트 혼과는 또 다른 의미로 대단한 배더군요.
미들오션 너머 천계에도 나타난 차원의 폭풍을 조사하기 위해, 파견되었다고 하더군요.
지벤 황국에는 제가 도움을 요청하겠어요. 차원의 폭풍이 미들오션 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하니 천계의 협조를 구하는 건 어렵지 않을 거예요.
알겠습니다. 오늘은 바쁜 하루가 되겠군요. 그럼 모험가님,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상황은 대충 이해되었나요, 모험가? 이번에는 폭풍 안의 차원으로 조사단을 직접 파견할 예정이에요. 아마 목숨을 걸어야 할만큼 위험한 일이 되겠죠.
염치 없지만 이번에도 힘을 빌려주겠어요? 공국의 여왕으로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저 폭풍으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을 대신한 부탁이에요.
고마워요, 아라드를 벗어나 천계와 마계, 다양한 세계를 모험한 적이 있는 당신의 경험이라면 현장에서도 아마 이 상황에 대한 적절한 대처법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에를록스 - 검은 차원에 올라 산토리니와 대화하기
<퀘스트 완료>
[검은 차원] 참혹한 얼룩
조사단에 대한 논의를 위해 에를록스에 먼저 올라 천계의 대장군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천계의 지벤 황국에서도 이미 이번 일에 대한 조사를 하고 있더군요. 현재 상황에 대한 건 운 라이오닐 대장군이 자세히 설명해주실 겁니다.
가시죠, 모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폭풍의 항로 클리어 전)
(폭풍의 항로 클리어후)
네, 그로 인한 문제는 저희도 확인했습니다. 팔로만 주변에서 이미 말씀하신 파동으로 인한 균열들이 나타나더군요.
흐음… 생각보다 복잡한 얘기였네요. 어쨌든, 저 폭풍이 불안정해진 원인을 찾아 안정시키면 된다는 거죠?
간단히 말하자면 그렇소. 말처럼 쉽지 않으니 문제인 것이지.
저희는 폭풍 안으로 진입해서 에너지 파동에 대해 조사해볼 계획입니다.
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선체가 한바탕 요동쳤다.
쇠가 긁히는 날카로운 소리가 문 밖에서 메아리치듯 들려왔다.
황녀님! 괜찮으십니까?
…괜찮아. 이 정도로 그렇게 과민 반응하지 않아도 돼.
밖에서 몰아치는 바람 소리가 심상치 않습니다.
벌써 도착한 건가요?
급히 달려온 병사의 보고를 듣던 운의 얼굴에 그늘이 졌다.
잠시 갑판으로 나갔다 돌아온 운이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착륙 준비를 해야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방금 말씀드린 폭풍 주변의 균열에 휩쓸린 것 같군요.
폭풍 안으로 진입해 차원에 대해 조사하기
<퀘스트 완료>
저건 뭐죠? 여긴 온통 괴상한 괴물들뿐이네요.
[검은 차원] 흉터로 기억되는 자
[검은 차원] 회담
<퀘스트 완료>
제국의 기사는 무사합니다. 다행히 위험한 기운이 온 몸에 퍼지기 전에 프리스트들이 나서 치료할 수 있었다고 하더군요.
휘유~ 다들 안색이 거무죽죽한 게 누가 다쳤다는 환자인지 모를 지경이군. 그래, 성과는 좀 있었소?
[검은 차원] 커지는 불안
거대한 에너지 파동이 이 앞에서 감지되고 있소. 폭풍 밖에서 느꼈던 에너지의 진원지가 바로 이곳이었던 모양이오.
듣던 중 반가운 소식입니다. 그곳으로 가면 이번 일의 원인을 알 수 있겠군요.
어서 가요. 여기까지 온 이상 두 눈으로 이번 일의 원흉을 확인해야죠.
황녀님! 너무 위험합니다. 차라리 황제 폐하께 보고를 올리고 다음을 기약하는 게…
여기까지 와서 돌아가자는 거야? 그리고 아무리 빠른 전령이라도 비탈론에 가서 폐하의 명을 받아오는데 일주일은 걸릴 거야.
폐하께서는 현장에서 답을 찾고 대응하길 기대하고 날 이곳에 보낸 거라고. 프란츠 오빠나 히리아 언니처럼 말이야.
그렇다면 저도 따라가겠습니다.
이봐! 내 검을… 윽!
정말… 몸도 성치 않은데 어떻게 날 호위하겠다는 거야?
여기서 성실하게 치료받고 있어. 나도 예전처럼 막무가내로 행동하지는 않을 거니까 말야.
…알겠습니다. 황녀님의 뜻이 그렇게 확고하시다면 어쩔 수 없지요.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국의 황녀님이 위험해지는 건 저희 입장에서도 바라는 바가 아니니까요.
흥, 겉만 번지르르한 녀석들이 말만 앞서는군.
파동을 쫓아 폭풍에서 느껴지는 에너지의 진원지로 향하기
그래그래… 언젠가 네가 다시 찾아올 줄 알고 있었지.
쥐새끼를 처리한 게 너희들인가? 그래, 같은 뿌리에서 태어난 사이지만, 그 녀석은 처음부터 지나치게 오만하고 배은망덕했다.
아마도 과거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기 때문이겠지. 그렇지 않아도 언젠가 한번 손을 봐주려고 했는데 말이야.
수고를 덜어준 건 고맙지만, 네 녀석들의 칼날은 그분을 향해있구나. 그렇다면 순순히 보내줄 수는 없다.
필멸자들답게 길지도 않은 목숨을 불태우며 달려드는구나. 그러나 그 분 앞에서는 모든 것이 무의미한 것.
균열이 조금만 더 넓어진다면… 차원을 넘어 너희가 딛고 사는 땅을 모조리 녹아내리게 만들 것이다. 절망 속에서 남은 날들을 세며 천천히 죽어가거라.
비루한 이 목숨 하나 따위는 아깝지 않지만, 그분을 더 이상 지켜드리지 못하는 것이 슬프구나!
윽, 갑자기…
(도저히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아.)
삶에 미련을 버린 녀석들이 제 발로 걸어 들어왔구나. 시체마저 핏물로 녹아 남기지 못하게 되고 싶은 게냐.
넌…? 그 때의 그 애송이로군. 덜 떨어진 꼭두각시 녀석.
흥, 차원의 틈을 이용해 날 제거하려는 시도는 좋았다. 하지만 고작 내 육신을 조각조각 내는 걸로 나를 소멸시킬 수 있을 줄 알았더냐?
(…설마?)
말을 아끼는 건가?
그래… 조금이라도 오래 숨이 붙어 있고 싶다면, 더 이상 발버둥치지 않는 것이 좋을 거다.
<퀘스트 완료>
편린이 사라지며 남긴 기운 속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목소리들이 들려온 것은 그때였다.
생기라고는 담겨있지 않은 목소리들은
당장이라도 사그라질듯 희미하게 속삭였다.
[검은 차원] 끝나지 않은 위협
감사합니다. 모험가님. 덕분에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 기운은 도무지 약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군요.
무사히 돌아와 다행일세.
개선 행렬에 초를 치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차원의 균열 또한 잠시 안정되었을 뿐이네. 언제 다시 열려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고 말일세.
그럼 우리… 아니, 모험가가 물리친 건 그 마물의 본체가 아니었다는 건가요? 하지만 환영이라기엔…
차원 안에서 느껴지는 기운으로 볼 때 아마 본체였다면 저희는 모조리 핏물이 되었을 겁니다. 아마 모험가님을 제외하곤, 아무도 이 자리에 서있지 못했겠지요.
그, 그런…
아무래도 근본적인 원인인 본체를 제거하지 못했기 때문인 것 같네.
에를록스는 태풍 근처에 좀 더 머물며 이곳을 주시할 생각입니다.
모험가님, 본국에는 들으신대로 보고를 올릴 예정입니다. 덕분에 당장의 위기는 넘겼지만, 앞으로의 일이 더 걱정이군요. 어쩌면 지금부터가 진짜 싸움의 시작일지도 모르겠네요.
저는 이곳에 남아 일이 돌아가는 추이를 좀 더 지켜볼 생각입니다. 제국과 교단에도 지원을 요청해야겠군요.
아직 일이 완전히 매듭지어지지 않았지만, 모험가님의 활약에 감사드립니다. 이곳에서 모험가님의 도움을 언제고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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