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도 기억되리라.
...기억과 깨달음...
이로써 진정한 자신과 마주하게 될 것이니.
나 자신...
가장 큰 깨달음은 자기 자신 안에 있으니.
자신을 넘어야 더 큰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
그 때 결국 그릇을 깨고, 날아갈수 있으메,
스스로 증명하라.
그릇을 깨고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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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퀘스트 완료>
칼날은 연단되었다.
접기
마음의 동요가 칼끝에 전달되었다.
무엇이라도 벨 수 있을 것 같았던 자신감은
한순간에 오만이 되어 무엇 하나 벨 수 없게 되었다.
초심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운명을 거부하고 검의 길을 걷고자 했던 순간을 기억해내라.
남들이 거부했던 길을 나만의 길이라 여겨 걸었던 그 순간처럼
그의 길을 좇는 것이 아닌 나만의 길을 걸어라.
모든 것을 내려놓아라.
그리하여 비워진 손에
철의 검보다 예리하고 무거운
마음의 검을 쥐어라.
그리고 마침내 스스로 개척해낸 산의 정상에서
반대편 산봉우리에 있는 그를 바라보겠다.
내가 검의 길에 오른 것은
경지에 오르고자 함도 그의 위에 올라서고자 함도 아니다.
나는 검성(劍聖)도, 검신(劍神)도 아니다.
그저 한 명의 웨펀마스터.
그것으로 족하다.
접기
두 세상을 가르는 거대한 문이 열려 하나로 통하니
한 세상에 두 개의 달은 존재하지 못하리라.
현세의 달이 숨죽여 모습을 감추고 명계의 달이 모습을 드러내니
귀기에 눌려 잡귀는 흔적조차 내비치지 못한다.
시간이 멈춘 듯 정적이 흘렀다.
곧이어 문 안에서 형용할 수 없이 거대한 존재가 걸어 나왔다.
그 옛날, 멸망해가는 제국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던졌던 신관조차 공포로 내몰았던 존재.
모습을 드러내는 것만으로 백귀를 떨게 만든다는 명계의 절대자.
명계의 문지기이자 합당한 열쇠의 소유자.
여덟번째 귀신 문의 주인, 카론.
”백귀 위에 군림하려 드는 자여.”
그의 단어 하나하나에 마치 저주가 담긴 듯 뇌리를 파고들었다.
허나 백귀 위에 올라 왕이 되고자 하는 이는 도리어 웃음 지었다.
“권능을 내놓아라.”
그와 함께 쏟아져 나온 블레이드 팬텀들이 우우- 하는 소리와 함께 칼날을 곤두세웠다.
그를 제외한 여덟 귀신도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대의 말을 따를 이유가 있는가.” “부름에 응하지 않은 귀신들을 명계로 보내주지.”
귀음(鬼音)이 요동쳤다.
명계의 문 너머에서는 힘을 쓰지 못하는 그가 현세에 손을 뻗칠 수 있게 되는,
명계의 문지기로서는 너무나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잠시 침묵이 이어졌으나, 결국 답은 정해져 있는 듯했다.
시끄럽던 귀음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이어서 카론의 손에서 검 한 자루가 드러났다.
”그대에게 명계의 열쇠를 줄 것이다. 허나, 업보는 더욱 무거워질 것이니...”
조언이자 경고.
하지만 위태로운 줄다리기 위에서 그는 기꺼이 웃음지어 보인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는 듯했다. 이를 알아차린 카론은 손을 뻗었다.
”검을 받으소서. 백귀의 왕이자 아홉 귀신의 합당한 지배자이시여.”
접기
마침내 또 한 번의 우화가 시작된다.
뿜어져 나온 혈기가 몸과 검을 뒤덮었다.
팔에서 시작된 진홍빛 혈기가 가슴을 타고 올랐다.
이제껏 겪어보지 못했던 파열감이 전신을 집어삼킨다.
극심한 고통에 몸이 발작하듯 튀어 올랐다.
몸이 꺾이고 뼈가 부서진다.
모든 피가 금방이라도 피부를 찢고 터져나갈 듯 요동친다.
한 줌 남은 이성은 저항하고자 한다.
더 이상은 위험하다,
지금이라면,
힘에 속으면 안 된다.
지금의 나라면,
죽고 말 거야.
그 힘을 다룰 수 있을 거야.
이성은 한 줌도 남지 않았다.
눈을 뜬다.
나는 살아있다.
심장을 뚫고 지나간 혈기의 흔적에서부터 고통이 전해진다.
넘쳐 흐르는 혈기의 갑주를 느낀다.
느껴본 적 없는 고양감이 온 몸을 휘감는다.
광기로 뒤덮인 검을 집어든다.
하늘을 향해 크게 웃어본다.
이것은 살아남은 자의 전리품이니,
아아... 나는 틀리지 않았다.
이 힘은 이제 내 것이다!
접기
암흑의 파동 속에서 심안을 깨우친 자여.
뇌전의 파동으로 뇌신을 이끌어낸 자여.
그대는 이제 모든 자격을 갖추었으니
이제 그만 진정한 눈을 떠라.
그리하여 혜안(慧眼)을 얻으리니
만물 속에서 파동의 흐름을 보게 될 것이다.
보고자 하는 것이 보일 것이고
느끼고자 하는 것이 느껴질 것이다.
깨닫지 못하는 것은 없을 것이요
바라보는 모든 것의 본질을 꿰뚫을 것이다.
이로써 파동이 흐르는 곳이라면
그대의 힘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을 테니
가히 권능이라 할 수 있을지어다.
- 파동 비전서 마지막 장 중
접기
나는 누군가를 지켜보고 있다.
한때 야차(夜叉)라고 불리던 자였다.
야차는 파오 언덕 위에 서 있었다.
그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누군가의 계략이었던 걸까.
수천의 투귀가 야차를 둘러쌌다.
야차가 기다리고 있었던 자는 결코 아니었다.
이제 보니 알겠군. 저자들은 분명 타오 가문의...
언제나 그러하듯, 야차는 투귀들을 베어나갔다.
과연 야차라고 불리던 실력이었다.
그의 검술을 보고 있자니, 잊었던 검술이 떠오른다.
그래, 나는 저런 전투를 했었지.
하지만 그의 기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중과부적(衆寡不敵).
시체의 산 위에서, 기력이 다한 야차 역시 몸을 뉘고 말았다.
가빠진 호흡 속에서 본능적으로 지금 이 숨이 마지막 호흡인 것을 알 수 있었다.
점차 희미해지는 호흡 중에도 인기척을 느껴 고개를 돌렸다.
그토록 기다리던 자가 무어라 외치며 달려오고 있었다.
“...님! ...모한 님!”
드디어 왔구나. 나의 제자.
너는 노비 출신이면서도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었지.
어쩌면 야신보다 더...
이제 마지막이구나.
한평생 검 위에 목숨을 올려놓고 더할 나위 없는 삶을 살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더욱 성장할 널 지켜볼 수 없음이
꿈꿔온 너와의 대결이 이루어질 수 없음이 너무도 원통하구나.
아아... 이대로 허무한 죽음을 맞아야만 하는가.
다시 고개를 돌려 하늘을 바라보았다.
갈라진 달이 야차를 비추었다.
“...그럴 순 없다.”
의식의 틈새로 흘러들어온 장면은 점점 희미해지고
마지막으로 내뱉은 말만이 또렷하게 뇌리에 새겨진다.
...
꿈을 꾸었나. 아니, 이건... 기억이다.
눈앞에 감정 하나 남지 않고 악귀가 되어버린 검사를 바라보았다.
가히 악귀무쌍(惡鬼無雙)이라 불릴만한 자.
나의 기억이 돌아올수록 잊었던 수천 가지의 검술이 떠오르고
이를 익힌 그는 오히려 악귀가 되어간다니. 이 얼마나 기구한가.
“계속하지.”
그를 향해 검을 겨누자, 그 역시 말없이 검을 뽑아 들었다.
오랜만에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이 자라면 분명 내 한을 풀어줄 수 있으리라.
접기
“플람베르쥬.”
꺼지지 않는 마력의 불길은 차가워졌던 뺨을 금새 상기시켰다.
그녀는 힘껏 쥐고 있던 플람베르쥬의 손잡이를 살며시 놓고, 보호 장구에 마수의 힘을 집중했다.
불속성의 마검은 두둥실 떠올라 명령을 기다리듯 조용히 그녀의 곁을 지켰다.
“길라틴.”
혹한의 한기가 응집된, 날카로우면서도 아름다운 마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효율적인 마력의 사용을 위해서는 여러 속성의 마검을 동시에 부르는 일은 지양해야했지만,
지금 그녀가 다가서려는 영역은 그러한 경지를 넘어선 것이었다.
“스톰 브링어, 바리사다.”
곧이어 그녀의 의지에 따라 소환된 ‘스톰 브링어’와 ‘바리사다’가 그녀의 주위를 맴돌았다.
그녀는 팔에 장착한 보호 장구를 잠시 내려다보았다.
한층 강화된 성능 때문인지 마검들이 이전보다 흉흉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음에도 마력의 제어가 순조로웠다.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이제부터가 본격적인 시작이었다.
“...레바테인.”
주위를 떠돌던 네가지 속성의 마검이 한 점으로 모여들며 그녀와 맹약을 맺은 궁극의 마검 : 레바테인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모든 마검들의 정점에 서있는 존재.
한층 강해진 그녀의 마력을 보여주듯, 레바테인은 이전보다 더욱 거대해진 모습이었고
검신에서는 보호 장구를 통해 변환되어 마수의 힘이 끊임없이 넘쳐흘렀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강화된 레바테인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이전보다 두배는 넘게 커졌음에도, 확고해진 맹약과 마력의 연결로 인해 깃털만큼의 무게도 느껴지지 않았다.
깊게 심호흡을 한 그녀는 허공을 바라며 마음 속으로 베어내야할 공간의 한 지점을 상상했다.
있는 힘껏 휘둘러진 레바테인이 검신을 둘러싼 마력들을 떨쳐내며 폭발적으로 쏘아졌다. 마치 그녀가 검을 잡고 가장 먼저 배웠던 발검술처럼.
레바테인에 의해 갈라진 차원의 틈에서 하나둘씩 나타난 마검들이 별처럼 밤하늘을 뒤덮었다.
조금 전 사라진 플람베르쥬, 길라틴, 스톰브링어, 바리사다의 모습도 보였다.
마검들은 명령을 기다리는 병사들처럼 정렬해있었고 그녀는 그것들이 자신의 신호에 맞춰 군대처럼 앞으로 진격하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순한 수련일뿐인데도, 군대를 이끌고 나간 전쟁터에서나 느낄법한 긴장감이 전신을 휘감았다.
그녀가 손에 들린 레바테인을 지휘하듯 휘두르자, 시공간을 가르는 마검의 군세가 유성우처럼 거칠게 땅으로 쏘아져내렸다.
이내 천지를 뒤흔드는 거대한 충격이 아무도 없던 공터를 덮쳤다.
거대한 마력의 후폭풍이 지나가자 공터는 원래의 모습을 상상하기 힘든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자신의 성취를 확인한 그녀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걸렸다.
그녀의 시선은 처음부터 팔로만 너머 제국의 심장부를 향하고 있었다.
접기
“그래서 그 분을 처음 봤을 땐 어땠어요?”
갑작스러운 리테의 질문에 아드라스는 잠시 과거를 살피듯 허공을 바라보다 고민 끝에 입을 열었다.
“글쎄... 아무리 설명한들 네가 그 분을 직접 뵙지 않는 이상, 좀처럼 이해하긴 힘들거야.”
“힝~ 하지만 궁금한 걸요.”
의기소침해진 리테의 모습에 아드라스는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게 미소를 지었다.
“‘아, 나는 죽었구나.’ 싶었지.”
아드라스의 솔직한 감상에 리테는 재밌다는 듯,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적들에게 둘러싸인 상황이어서요?”
“아니.”
과거 한 시점의 기억을 또렷하게 불러오고 있는지,
그녀의 목소리에는 자신도 모르게 점점 힘이 실리고 있었다.
“그 분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죽음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어.
만약 우시르께서 누군가의 영혼에 현현(顯現)하신다면 그런 느낌이었을까?
죽음을 따르는 기사로서 한 번도 죽음이 두렵다고 생각한 적이 없지만, 알고보니 그건 내가 죽음을 제대로 마주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지.”
죽음이 너를 구원하리라.
그녀를 마주한 순간, 아드라스의 귓가에는 죽음의 신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 했다.
그것은 수천 번씩 검을 휘두르며 우시르의 힘을 단련할 때보다 훨씬 선명하고 또렷한 감각이었다.
가까스로 아드라스가 그녀를 죽음의 신과 혼동하지 않은 것은
그녀에게서 단순히 성스러움을 넘어 같은 신을 신실하게 섬기고 있다는 동질감이 느껴졌기 때문이리라.
아드라스의 감상을 듣고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던 리테가 물었다.
“언젠가 그 분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네메시스의 성채에서 일련의 사건이 일어난 이후,
그녀는 다시 돌아올 것을 기약하며 연기처럼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마치, 그녀가 머리 위에 쓰고 있던 죽음의 기운이 담긴 베일처럼...
“물론.”
한 치 앞도 제대로 보기 힘든 짙은 어둠 속을 확신에 찬 발걸음으로 나아가며,
어둠이 주는 안락함에 몸을 파묻은 채 아드라스는 마음 속으로 되뇌었다.
‘항상 그림자 속에서 지고한 부름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우시르의 대리자시여.’
접기
수천 마리의 뱀이 일제히 피부 위를 기어가는 듯한 소름 끼치는 감각과 함께
마검을 벗어난 마인들이 슈트 형태로 변해 내 몸을 감쌌다.
아무런 갑옷을 입지 않은 것처럼 가벼우면서도 그 어떤 공격도 막아낼 것 같은 안전한 감각.
세포 하나하나에 그들의 힘이 깃들어 무엇이든 토막낼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에 휩싸였다.
[...만족스러운가?]
다이무스의 음성이 머릿속에서 울려퍼졌다.
자신의 도움 없이도 내가 완벽하게 마인들을 통제하자 충격을 받았는지 애써 담담한 척하는 기색이었다.
하지만 표정이나 목소리가 아닌, 머릿속으로 바로 전해지는 의사 소통 방식은 녀석의 감정을 숨기지 못하게 만들었다.
나도 모르게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 한 때는 힘을 빌리며 내가 이들에게 굴복할 뻔 했지만 이젠 정반대의 상황이다.
“역시... 힘 앞에선 꼬리내린 강아지처럼 복종하는군.
어찌 보면 마인(魔人)이라고 부르기 미안할 정도로 참 정직한 녀석들이야.”
나는 힘으로 이들을 완벽히 제압했고 내 발 아래에 복종시켰다.
코 앞에 있던 답을 찾기위해 빙빙 돌아온 느낌이었다.
허락보다는 강요가, 인정보다는 굴복이 마인들에게는 더 어울리는 방법이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다이무스의 편에 서서 내게 이를 드러내던 프놈과 켈쿠스는 이제 내 발 아래 얌전히 엎드려 있었다.
“다이무스.”
움찔거리며 내 목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녀석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그 모습이 너무나도 우스워, 입을 닫고 있음에도 몸 밖으로 웃음이 새어나가는 기분.
누군가의 등을 밟고 철처히 그 위에 서있는 강자의 기분이었다.
“겨우 이 정도로 만족하느냐고? 당연히 아니지.
내 검을 봐. 이 녀석들이 빠져나가니 날카롭던 이빨이 몽땅 빠져버린 것처럼 볼품 없어졌잖아.”
그제야 내 말에 담긴 의도를 알아차린 듯, 격렬하게 휘몰아치는 다이무스의 감정이 느껴졌다.
[네 녀석, 설마!]
“그래. 더 이상 네 허락이나 인정 따위는 구하지 않겠다.
이리로 와서 내 검이 되어라, 다이무스.”
경악한 다이무스가 꼿꼿하게 그 자리에 서서 나의 기세에 저항하는 것이 느껴졌다.
힘에서 밀린 다이무스의 존재감이 손에 든 마검으로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알카트라즈...’]
압도적인 힘과 마검으로 만들어낸 영원한 나의 감옥.
손에 든 검을 가볍게 휘두르자 불만스러워하는 기색과는 반대로,
내 수족처럼 충실히 움직이며 기운을 뿜는 다이무스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이로써 나는 진정한 마인들의 여왕.
마인들로 채워진 나의 영역에, 적들의 영혼마저 가두어 개처럼 무릎 꿇릴 자.
이제 세상의 모든 마인들은 내 발 밑에 조아리며 복종해야 하리라.
접기
순백의 달이 떠있는 밤하늘 아래에서, 그녀는 홀로 다른 세상에서 노니는 듯 했다.
그녀의 검(劍)과 장(掌)이 지나는 곳에는 어김없이 피가 튀었지만,
그녀의 주변으로 피어나는 아름다운 꽃잎이 비릿한 피냄새를 덮고 있었다.
오랜 세월, 낭인으로 대륙을 떠돌아 다니며 꽤나 많은 검술들을 눈으로 보아왔다고 자부했건만
아직 태어난 우물조차 벗어나지 못한 개구리의 착각이었을까?
좁은 견문으로 자만했던 내 자신이 일순 부끄러워졌다.
많은 베가본드들이 오로지 본신의 내공과 검에 기대어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고
그 중에서도 초인적인 인내과 타고난 재능을 지닌 극소수만이 검호(劍豪), 검제(劍帝)라는 존경이 담긴 칭호로 불린다.
그러나 그날 내가 목도한 것은 그 이상의 경지.
검선(劍仙). 검술에도 신선의 경지가 있다면 이런 느낌일까?
간단한 동작 하나에도 절제와 여유로움이 동시에 묻어나고,
스스로의 무도(武道) 위에서 자신이 알지 못하는 길은 없다는 듯 막힘없이 춤을 춘다.
“생애 마지막 달빛이거늘...”
양손 위에서 자유롭게 노닐던 두 자루의 검은 어느새 마법처럼 하나가 되었고
그 순간 펼쳐진 것은 세상마저 숨을 죽인 듯한, 고요하면서도 강력한 일섬.
보름달 아래에서 그녀가 일(一)자로 가른 세상에는 적들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듯 꽃이 피었다.
“하아...”
모두가 쓰러진 밤하늘 아래에서 그녀는 꽃이 피고 적들의 숨이 지는 것을 진심으로 슬퍼하는 것 같았다.
수풀 속에서 홀린 것처럼 그 모습을 지켜보던 나는 그녀와 눈이 마주친 순간 손 끝 하나 움직일 수 없었고
피었다 지는 꽃잎들 속에서 가벼운 발걸음으로 사라지는 그녀에게 아무런 말도 걸 수 없었다.
그날 이후 한참의 시간이 지난 뒤에야, 나는 그 때 보았던 것이 진짜 꽃잎이 아니라
한 사람에게서 발출된 내공이 꽃잎처럼 흩어지는 것이란 것을 가까스로 깨달을 수 있었다.
- 어느 베가본드의 회고록
접기
나무는 숲과 다르지 않고 돌은 바위와 다르지 않으니
작은 미물마저도 모두 거대한 넨을 품고 있더라.
무릇 힘을 자신하는 자가 가장 미약한 법이니
내가 미물이요, 미물이 나일지라.
어린 날 분노에 눈이 멀어 힘만을 추구하였으니
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누구나 겪을 죽음에 사색이 되어 살고자 발버둥 쳤으니
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제 행동을 후회하며 숲과 들의 힘을 빌어 미약한 목숨을 보전하니
그때 모든 것을 내려놓았다 생각하였다.
허나 갓 태어난 아기가 첫 숨을 서럽게 울며 시작하듯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난 이제야 가늘게 눈이 뜨이는 것이라.
뜬 눈 너머로 보았던 자연경(自然境)이 너무나 아름다워 그 광경을 다시 보고자 하니
눈에 새겨진 사나운 광휘가 이를 보지 못하게 하더라.
나에게 아직 사나운 광휘가 남아있어 내가 행하고자 하는 것을 행하지 못하니
어린 날 스스로의 생명을 깎아가며 얻어낸 힘도
미물의 목숨을 보전코자 했던 노력도
모두가 부질없어 그저 허탈한 웃음만이 입가에 맴도는구나.
한참을 웃고 난 후에야 선명하게 뜬 눈에는
사나운 광휘 대신 자애로운 금안(金眼)만이 남아 나를 바라보더라.
나 역시 가만히 금안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과연 이것이 내가 보고자 했던 자연경이더라.
접기
오랜 시간 승리에 취해, 망가진 자신을 깨닫지 못했다.
압도적인 패배를 겪고 나서야 우스운 내 꼴이 보였다.
몸을 아끼지 않는 무모함이 나의 힘이었을진데
이 미적지근한 불은 도대체 무어란 말인가.
사파(邪派)라며 얕잡아본 이들의 의표를 찌르는 자유분방함이 나의 재능이었을진데
이 틀에 얽매여 고착된 동작들은 무어란 말이냐.
부끄럽다.
너무나 부끄러워 고개를 들 수가 없다.
투기가 차갑게 식는다.
몸에 두른 불꽃이 꺼져간다.
그리고 모든 불이 꺼졌다고 여길 때가 되어서야
나의 모든 것이 바뀌어 갈때 유일하게 바뀌지 않은 단 하나.
여전히 고동치는 심장의 열기가 느껴졌다.
스스로를 스트라이커라 칭하기 시작했던 그 날을 떠올려본다.
상처로 얼룩진 몸을 이끌고 승리했을 때의 무모함을 떠올려본다.
진정한 나의 모습을 떠올려본다.
심장의 불꽃이 삽시간에 다시 몸을 덥히고 몸 밖까지 작열한다.
무식하다 해도 상관없다.
무모함이 본래의 내 모습이었으니.
볼품없다 해도 신경 쓰지 않는다.
애초에 네놈들을 위해 걷는 길이 아니었으니.
단 한 대일지라도 혼신의 일격을 가해라.
혼신의 일격을 두 번, 세 번, 몇 번이고 날려라.
그리하여 연격은 곧 모든 것을 불사르는 일격이 될 것이니,
모든 것을 불사르는 영원불멸의 불꽃이리라.
접기
“크으... 비겁한...!”
덩치의 사내가 육중한 소리를 내며 쓰러졌다.
몸에는 수십 개의 바늘이 꽂혀 있었고 드문드문 둔탁한 것에 맞은 듯 패인 자국도 보였다.
무엇보다 중독된 피부는 도저히 쳐다보기 힘들 정도로 괴사하고 있어,
비위가 약한 자들은 헛구역질하며 군중 사이로 내빼기도 했다.
자연스레 시선은 덩치의 사내를 쓰러트린, 그의 건너편에 있는 애꾸눈 사내에게로 향했다.
자극적인 혈투를 보기 위해 모인 군중이었지만, 상상 이상의 잔혹함이 그들의 비위를 상하게 만든 듯했다.
비난의 눈초리가 애꾸눈 사내에게 바늘처럼 꽂혔다.
사내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듯 무표정으로 일관했다.
“비겁?”
사내가 입을 덩치의 귓가로 가져갔다.
“언제부터 ‘데스매치’에 비겁이라는 단어가 통했지?”
이미 거품을 물며 축 늘어진 덩치는 듣지 못했겠지만,
사실 이는 그를 지켜보고 있었던 모든 군중에게 한 말이나 다름없었다.
들어 올린 덩치를 다시 내던진 사내가 자신을 둘러싼 군중들에게 시선을 돌렸다.
“모두가 안일해. 마치 애들 장난을 보는 것 같다고.”
대놓고 모멸을 들은 군중의 분노는 마침내 끓는 점에 도달했다.
“건방지다!”
“놈을 죽여!”
군중 사이에서 여럿이 제각각 무기를 들고 앞으로 나왔다.
그의 모욕적인 발언을 참을 수 없다는 그럴싸한 핑계로 나오긴 했지만
앞으로 나온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쓰러진 덩치에 돈을 걸었던 자들뿐이었다.
모욕에 대한 대응이라기보다 잃은 돈에 대한 화풀이에 가까웠다.
새로운 데스매치의 개막을 예상한 군중은 너 나 할 것 없이 또다시 돈을 걸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마저 예상했는지 사내는 여전히 무표정하게 그저 팔을 축 늘어트렸다.
수십 개의 쇠사슬이 거친 마찰음을 내며 흘러내렸다.
갑작스러운 쇠사슬 소리에 군중의 시선이 다시 사내에게로 향했다.
“모두에게 전해.”
무표정하던 사내의 얼굴에 그제야 감정이 드러났다.
섬뜩한 사내의 냉소를 목격한 주변이 모두 시간이 멈춘 듯 얼어붙었다.
“물러터진 뒷골목을 바꾸기 위해 내가 돌아왔다고.”
정적을 깨고 사내가 팔을 사납게 휘둘렀다.
쇠사슬은 그의 기분에 동조라도 하듯 주변의 건물들을 채찍처럼 후려쳤다.
종잇장을 가르듯 건물들은 손쉽게 붕괴했고, 건물의 잔해들은 오롯이 군중들에게 쏟아져 내렸다.
비명이 난무하는 참상. 아비규환이었다.
그리고 그 틈에서, 마침내 사내의 얼굴에 광기의 웃음이 피어났다.
사내는 손에 들린 폭탄을 던지며 중얼거렸다.
“살아남는다면 말이지.”
자욱한 먼지와 함께 폭발음이 뒷골목을 뒤덮었다.
접기
순수한 강함의 추구 외에 모든 것을 배제한다.
흑진단의 유일무이한 규칙이자 신념.
신념을 바탕으로 수많은 도장을 부수어왔고,
비록 과격할지언정 민중의 강력한 지지를 받았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나는 고민했다.
우리는 과연 진정으로 순수한 강함을 추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는가?
본능에 내재된 투쟁심을 표출할 수단으로 스스로 의적을 자처하고 있진 않는가?
그로 인해 스스로 도덕적으로 우월하다 자위하며 본래의 신념을 저버리지 않았는가?
그것이 과연 진정으로 흑진단이 추구하고자 했던 바인가?
이것은 흑진단이 아니다.
나는 깨달았다.
강함을 추구하고자 하는 마음이 그릇된 투쟁심으로 와전된 지금,
우리에게 미래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신념을 되짚어라.
그리하여 고민하고 또 고민해라.
고뇌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부동심(不動心)의 경지에 올라라.
나는 도달했다.
투기는 정갈하지만 과격할 것이며 투박하지만 아름다울 것이다.
힘으로 산을 뽑을 것이고 기개로 세상을 덮을 것이다.
스스로 그런 인물이 되었다고 생각한다면 나에게 오라.
내 손수 그대의 자질을 시험할 것이니.
그리고 그때 비로소 흑진단의 도약이 시작될 것이다.
- 흑진단주령(黑震團主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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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주변을 경계하며 어떤 자세로든 상대를 맞출 수 있어야 한다.”
노인은 시가를 입에 물고 크게 한숨 들이켰다.
이내 스으- 하는 소리와 함께 입안에서 희뿌연 연기가 쏟아져 나왔다.
“그것이 레인저(Ranger)다. 우리 늙다리 세대부터 전해져 오는 교과서 같은 말이네.”
노인이 시가를 탁탁 털었다.
“하지만 좀 더 원론적으로 들어가 보세.
우리가 그런 묘기에 가까운 사격술을 연마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그 시발점부터 말일세.”
잠시 고민할 시간을 주기 위해 젊은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노인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다시 입을 열었다.
“무법지대는 언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네.
때문에 언제든 벌어질 전투에 대비하기 위해 신경을 날카롭게 세워두고 있지.
그리고 긴장된 상태는 마침내 전투가 벌어졌을 때 최고조에 이를걸세.
그 최고조의 긴장 상태에서, 머리 옆을 스쳐 지나가는 탄환이 느려지는 감각을 느낀 적이 있나?”
젊은이는 입은 꾹 다문 채 고개만 끄덕이고 있을 뿐이었다.
“위기의 순간에 초인적인 힘을 내는 사람들의 이야기. 내가 말하려는 것도 이와 같네.
신경이 극한으로 곤두서게 되면, 주변의 모든 것들이 느려지는 듯한 느낌을 받곤 하네.
하지만 주변의 모든 것은 그대로일세. 다만 그때의 자네가 초인적인 힘을 내고 있을 뿐.”
젊은 날의 자신과 닮은 눈빛을 알아본 노인이 씩 웃어 보였다.
실마리를 찾은 젊은이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가끔 이 경지에 오른 자를 상대하고 있자면 마치 예지력을 가진 자를 상대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게 되네.
하여 다들 이 경지를 ‘프리비전’이라고 부르고 있지. 이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게 된다면... 어떨 것 같나?”
말을 마친 노인이 손에 들고 있었던 중절모를 머리에 눌러썼다.
“물론 터무니없는 이론일세. 다들 경험은 해봤을지언정 그 실체를 잡은 적은 없으니까.
하지만 자네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군.”
노인은 인사는 필요 없다는 듯 젊은이의 어깨를 툭툭 쳐주었다.
“답을 찾았길 바라지.”
젊은이는 석양을 향해 나아가는 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무법지대의 전설에게 썩 어울리는 그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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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처 부대는!”
“이미 전멸한 상태입니다! 이대로 가면...!”
누가 그랬던가.
천계는 이제 평화롭다고...
천계인으로서는 수치스러운 기억인 내전 뒤로 모두가 이제는 평화로울 거라 말했지만...
그것은 숨기고 싶은 역사를 서둘러 가리고자 하는 포장지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카르텔의 위세가 이전보다 꺾였다 한들 웨스피스가 무법지대로 존재하는 이상
카르텔의 위험은 언제나 천계의 목을 조르고 있었다.
귀족원과의 내전 이후 군부는 재정비를 하느라 정신없었고
많은 지도부가 내전 중 사망하고 교체되었다.
그나마 교체된 핵심병력도 천계를 꿰뚫은 폭풍에 대한 조사나 사도의 출몰로 분산된 상태...
웨스피스의 잔재가 이리 치명적일 줄은 예상하지 못했기에 안일했던 나의 판단을 질책했다.
그리고 그때, 그가 등장했다.
어쩌면 내심 기대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위성에 연결할 수 있는 천계에서 몇 안되는 존재.
천계의 영웅이라 불리지만 지위와 명예에 욕심이 없으며 이제는 전 대륙을 떠돌며 ‘모험가’라 불리는 자.
일대 다에 능한 그의 가공할 능력과 무기들은 그 존재만으로 전장의 우위를 뒤바꿀 만큼 경외로운 것이었다.
그리고 때마침, 병력의 지원이 어려운 혼란한 상황 속에서 위성을 통해 정보를 입수한 그가 등장한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그라도 너무 늦었는지도 모른다.
당장 코앞까지 적의 부대가 들이닥친 이 상황에서는...
뒤늦게 승전보를 올릴 수 있을지는 몰라도 많은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오비탈 디재스터(Orbital Disaster)를 요청할 겁니다.”
무슨 말인가 싶어 잠시 단어를 곱씹던 나는 뒤늦게 위성을 통한 특수 공격 작전의 명칭을 떠올렸다.
단 한 번도 본적 없으며, 세븐 샤즈에 의해 개발된 무기라는 얘기만 들었을 뿐 존재 유무도 몰랐던 무기.
하지만 만일을 대비해 전달된 지시사항으로 해당 작전 진행 시 무엇을 해야 되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위성을 통해 요청된 신호로 명령이 전달되면 위성에서 융합로가 목표지점에 떨어지게 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터지는 융합로를 피해 최대한 아군을 안전한 곳으로 물려야 했다.
하지만... 이 작전의 단점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융합로가 터지기까지는 걸리는 시간 동안 적군 또한 피할 수 있다는 것.
적군이 피하지 못하게 어느 정도 견제를 해야만 효과가 큰 작전이었다.
대량의 적을 말살할 수 있지만 그만큼 조건이 따르는 무기...
나는 승리를 위해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할 것을 다짐했다.
하지만 그런 내 각오가 무색하게 그는 당장 퇴군할 것을 요청했다.
“그렇게 되면, 융합로가 폭발하는 시간을 맞출 수가...”
초조해하는 내 말을 뒤로하고 그는 레일건을 꺼내 바닥에 고정하기 시작했다.
묵언의 의사에 나는 그의 말대로 부대를 물릴 수밖에 없었다.
도대체 저 레일건 하나로 융합로가 터질 때까지 어떻게 버티려는 건가 싶었지만
애써 밀려드는 생각을 뒤로하고 퇴군하는 부대와 함께 전장을 이탈해나갔다.
그리고 그순간 전장을 벗어나며 눈앞에 벌어지는 장면을 나는 똑똑히 목격했다.
하늘의 구름을 가르고 떨어지는 거대한 융합로.
융합로의 내부가 열리며 폭발을 위해 가동되는 순간 시간이 흐를 틈도 없이
눈부신 레이저 광선이 융합로를 꿰뚫고 뻗어나갔다.
혼비백산하던 적군들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눈치챌 새도 없이 융합로의 폭발과
레이저의 연쇄반응으로 눈부신 광원과 함께 흩어져버리고 말았다.
그 짧은 사이에 벌어진 모든 일에 대해 그의 순발력과 단호함에 다시 한번 경외감을 갖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솟아오르는 광원의 폭발을 바라보며 묵묵히 레일건을 장전하던 그의 뒷모습은 평생을 가도 잊히지 않을 것이다.
- 웨스피스군 장교의 기록물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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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퀴한 먼지가 덮인 어둠 속에서 유일한 빛이 새어 나오는 곳.
다른 곳으로 전력을 소비한다는 자체가 아까운 듯 오직 한 곳에만 집중된 빛 아래로는 사내의 음영이 비추고 있었다.
적막한 공간 속에서 유일한 빛에 의존한 채 달각거리며 무언가를 만지던 사내의 입가에 호가 그려졌다.
그의 기분에 동조라도 하는 듯 빛을 비추고 있던 동그란 로봇 또한 부르르 떨었다.
아니, 엄연히 말하면 그 로봇 또한 자아가 있는 존재였으니 기쁨에 의한 떨림에 가까울 것이다.
사내의 곁에서 빛을 비추고 있는 로봇의 명칭은 HS-1.
사내를 수족처럼 따르는 2기의 로봇 중 하나였다.
다른 하나는... 마치 잠이 든 듯, 흐릿한 빛줄기 아래에서 고철처럼 너부러져 있었다.
초조한지 연신 허공을 동동거리며 산란하게 움직이는 다른 1기와 다르게 사내의 표정에는 한 치의 의심도, 걱정도 없었다.
천계의 과학력과 마이스터의 지식, 그리고 그가 보고 듣고 겪은 다른 세계의 지식에 대한 경험
반복된 도전과 실패 속에 깨달은 실마리!
모든 것이 거름이 되어 완성된 결합체였으니 의심할 여지는 없었다.
순간, 현을 튕기는 듯한 맑은소리와 함께 축 늘어져 있던 기계에 불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모두가, 아니 사내와 로봇이 숨을 죽였다.
그리고 전원이 들어온 검은 로봇의 led 화면에 업그레이드된 프로그램명이 띄어졌다.
‘System Of Progressive High-tech Interactive AI... Upgrade complete’
사내가 만든 S.O.P.H.I.A가 성공적으로 HS-1에 탑재되는 순간이었다.
잠에서 깨어난 듯 led화면을 끔벅이던 HS-1이 서서히 떠올랐다.
벅차오르는 성공의 기쁨을 만끽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S.O.P.H.I.A를 프로그래밍한 결정적 이유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친구들’과 함께 더 짙은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간 그가 고갯짓하자 오더를 인지한 ‘친구들’이 허공으로 높이 떠올랐다.
곧 전류가 생성되며 스파크가 튀는 소리와 어둠 속에서 빛의 구가 피어나기 시작했다.
아래에서부터 차례대로 밝혀지는 조명은 거대한 무언가를 비추고 있었다.
집채만 한 아니, 성채만 한 크기의 무언가.
그것은 팔, 다리가 존재했고 두꺼운 장갑에 둘러싸여 있었다.
신화에서나 등장했을 법한 거대한 위용의 존재.
이 거인의 잠을 깨울 수 있는 열쇠가 이제 그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GW-16 발트슈타인’이 최초로 기동하기 3일 전에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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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네의 활약상은 언제나 짐을 놀라게 하는군. 정말 수많은 일을 해냈다 들었네.
언제나 최전선에 앞장서는 지휘관이라고 한다지?
입에 발린 말은 아니네.
블랙 로즈단을 지휘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자네의 자격을 입증하고 있는 것일 테니.
자네가 뛰어난 역량을 지닌 지휘관이기에 한 가지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네.
앞서 지나간 일련의 사건들로 정보의 중요성을 크게 깨닫고 있네.
정보가 있었다면 쉬이 카르텔에게도, 안톤에게도 당하지 않았을 테지.
다시 그런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해 짐의 눈과 귀가 되어줄 조직이 절실해진걸세.
전략정보국이 그 역할을 해주고 있지만, 그들은 지벤 황국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진 못하고 있네.
짐의 직속 부대인 황녀의 정원 역시 비슷한 처지지.
때문에 천계와는 관련 없는 자로서, 지극히 개인의 신분을 가지고 외부의 식견을 넓히고 짐을 도와줄 자가 필요하네.
그 일을 자네에게 부탁하고 싶네.
물론 자네 혼자에게 이런 일을 맡기는 것은 아닐세.
다시 뭉친 세븐 샤즈가 발명한 새로운 기술 중에 몇 가지를 접목한 신설 부대가 있네.
전략정보국에 소속되어 있지만, 전략정보국을 포함한 그 누구의 명령도 받지 않는 독립된 부대일세.
부대의 이름은 이터널 버스터.
과거 천계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단체, 이터널 플레임의 명맥을 이어나갈걸세.
이들의 지휘를 자네에게 맡기도록 하지.
다만, 이들을 지휘한다면 자네는 자네에게 임명된 다른 모든 직책에서 박탈될걸세.
모든 명예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이야기지.
앞서 말했듯 천계와 관련 없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판단이었으니 이해해주길 바라네.
그럼에도 짐의 뜻을 따라주겠다면, 함께 전달된 문양을 달아주게.
자넬 위해 새로이 준비된 대원들이 찾아갈 테니.
그럼, 몸 건강하길 바라네.
- 천계에서 온 서신
연단된 칼날인가…
진정한 각성 下 (4/4)
모험가님! 돌아오셨군요!
망자의 협곡에서 로이 더 버닝펜과 대화하기
(해당 퀘스트는 젤바의 로이 더 버닝펜을 통해 `에피소드 전용 마을`로 이동하여 수행 가능합니다.)
…그래… 그 눈빛을 보니 원하는 걸 손에 쥐었나 보구나.
지금 너의 모습을 보니 이제 나도… 아젤리아도…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아.
저도 마찬가지예요. 그리고 솔도로스 님이 모험가님만을 기다린 이유도 이제야 알 것 같아요.
그래서 아젤리아 님도 웃으셨던 거겠죠? 지금, 이 순간을 이미 알고… 흑…
꼬맹이, 그만 울어. 슬퍼하지 않아도 돼.
우리의 역할은 끝났어.
정말로… 전부…
그러니 이제 돌아가자. 돌아가서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자.
그렇게 하자.
정말 솔직하지 못한 아저씨네. 나보고 울지 말라면서…
모험가님, 우리는 다시 젤바로 돌아갈 거예요.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새로운 길을 찾아 나갈 거예요. 모험가님도 자신의 길로 향하세요.
서로 다른 길이라도 흔들리지 않고 길을 나아간다면, 언젠가는 그 끝에서 다시 마주칠 수 있게 될 거예요.
그럼 안녕히 가세요. 모험가님의 앞길에 아젤리아 님이 남긴 축복이 가득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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