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공의 둥지

"마귀의 리더가 사라졌다."

독헤드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스니프 케이는 서류 더미에 묻고 있던 고개를 들어 갑자기 집무실에 찾아온 그녀를 바라보았다.
보고로 들어 이미 알고 있던 내용이지만 개줄의 리더는 일부러 놀란 표정을 지었다. 카쉬파라는 집단에서 익힌 나름의 처세술이었다.
때론 모르는 척하는 것이 아는 것보다 나을 때도 있다.

"히카르도 말입니까?"

그는 내심 새로운 정보를 기대하며 부수장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독헤드는 아무 말 없이 품 안에서 곰방대를 꺼내 물었다. 독헤드의 입에서 한숨처럼 새어나온 연기가 개의 형상을 잠시 이루었다가 이내 공기 중으로 흩어졌다.

"카지노에서의 내분 때문이군요. 거긴 완전히 박살나서 제대로 된 흔적을 찾으려면 몸이 열 개여도 모자랄 판입니다."

독헤드는 여전히 아무 말없이 스니프 케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저 눈빛. 무슨 생각을 하는지 짐작하기 힘든 저 심연이야 말로 간부들이 독헤드를 두려워하는 이유였다. 마치 자신의 머릿 속을 샅샅이 뒤져보는 듯한 부수장의 눈빛과 마주치자, 스니프 케이는 자신도 모르게 시선을 돌렸다.
꽉 쥔 손에 땀이 배이는 것이 느껴졌다.

"다크 시티."

독헤드의 말에 스니프 케이가 눈을 반짝였다.

"비밀 통로와 이어진 곳에 '사도의 알'과 관련된 흔적이 남아 있다. 우선 히카르도를 찾아. 그리고 알을 회수해라."

사도의 알! 마계의 부를 절반 넘게 차지하고 있다는 로열 카지노의 욤이 위험을 무릅쓰고 손에 넣으려던 물건이었다. 약육강식이 당연시되는 이곳에선 거대한 마력이 담겨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무엇이든 탐욕의 대상이 되었다. 스니프 케이는 오랜만에 가슴이 뛰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욤과 다르게 그는 감당할 수 없는 물건을 유품으로 가져갈 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아니었다. 단지 누구나 탐낼 만한 목표를 쫓는다는 사실 자체에 기분이 고양되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곳엔 추격자 니우와 함께 움직이는 외부인들이 있습니다."
상기된 표정을 가라앉힌 스니프 케이가 말했다. "그것들이 끼어든다면 골치 아파질 텐데요."

"칙사가 이미 손을 써놓았다." 독헤드의 곰방대가 재차 연기를 뿜어냈다. "전투조와 약탈조 셋을 파견했다고 하더군."

"셋이나요? 조금 과한 반응이군요."

스니프 케이의 목소리가 조금 높아졌다. 마계인들이 두려워하는 카쉬파의 힘은 물론 대부분 어비스를 이식한 간부들로부터 나온다.
하지만 이 거대한 조직이 문제 없이 굴러가는 데는 전투조와 약탈조를 비롯한 하위 조직원들의 역할이 더 크다. 워크맨이 파견한 전투조와 약탈조의 규모는 로열 카지노에서 일어난 내분 이후 남은 전력의 거의 절반이었다. 독헤드는 의문을 풀어주는 대신, 마지막으로 긴 연기를 뿜어낸 곰방대를 품 안에 갈무리했다.

"시간이 없다. 다른 조직들도 냄새를 맡은 모양이야. 날파리들이 더 꼬이기 전에 움직여라."

"알겠습니다. 개줄을 풀죠."

독헤드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몸을 돌렸다.

"만약에 히카르도가 협조하지 않으면 어떻게 할까요?"

"개줄의 방식대로." 잠시 침묵하던 독헤드가 대답했다.

그녀가 떠나자 집무실의 두꺼운 나무 문이 스스로 닫혔다. 혼자 남은 개줄의 리더가 어둠 속에서 미소지었다.



스니프 케이는 생각에 잠긴 채 땅을 매만지고 있었다. 무언가 흔적을 찾는 것 같았지만, 사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나오는 그의 습관이었다.
쫓는 자의 가장 큰 미덕은 언제나 기다림에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었다. 신중을 기하는 일처리로 언제나 성공을 이끌어내던 그였지만, 이번만큼은 그도 조바심이 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아무 것도 모르는 신참이던 그가 첫 추적을 나서던 날처럼.

독헤드의 명령을 받은 지도 벌써 사흘이 지났다. 그 사이 그는 동원 가능한 조직원들을 모두 동원해 밤낮으로 흔적을 쫓았다. 다른 단체들의 이목이 쏠려있다는 독헤드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희미해져가는 마력의 흔적을 더듬으며 추적하는 동안, 스니프 케이는 멀찍이서 자신들을 주시하는 시선을 몇 번이나 느꼈다.
아마도 고리타분한 테라코타나, 호기심을 풀기 위해서라면 관짝이라도 볼 고대 도서관의 마법사들이겠지. 독헤드는 워크맨이 손을 썼다고 했지만,
어쩌면 조직의 일을 사사건건 방해하는 수호자들이거나 서클 메이지의 소환사들일지도 모른다. 평소라면 할렘 끝까지라도 추적해 쫓아냈겠지만,
당장은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눈앞의 히카르도를 쫓는 일이 더 중요했으니까.

"젠장..."

다크 시티에서 이어진 흔적을 쫓아 그들이 도착한 곳은 을씨년스럽게 솟아오른 마천루였다. 이미 몇 차례에 걸쳐 마천루의 안개 속으로 사라진 부하들은 여전히 소식이 없었다. 그들은 개줄 내에서도 고르고 고른 자들이었다. 전투조만큼은 아니더라도, 목표를 척살하는 임무를 수행하기위해 훈련받은 자들.
그는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하늘을 올려다 보았다. 그 사이 더 커진 것 같은 금색의 별은 불길한 빛으로 하늘을 물들이고 있었다. 얼마 전 저 곳에서 넘어온 괴물들이 밤의 마천루를 장악하고 있지만 않았더라도, 사흘 간의 노력은 이미 결실을 봤을 것이다. 그들이 쫓아온 흔적은 명백히 밤의 마천루 안으로 향해 있었다. 주변 어디에도 다시 나온 흔적은 없었다.

"어떻게 할까요?"

옆을 돌아보니 짧은 머리의 부관이 굳은 표정의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부관의 얼굴에는 불안해하는 표정이 여실히 드러나 있었다.

"어쩌긴. 여기까지 와서."

스니프 케이는 신경질적으로 머리를 빗어 넘겼다. 등 뒤에서 자신을 재촉하는 듯한 수십 개의 눈동자가 느껴졌다. 목표를 앞에 두고 도망치는 모습을 보인다면 그는 언젠가 잡고 있던 개줄을 놓치고 물어뜯길 것이다. 과거에 어비스 이식을 자처했던 그가 전대의 리더를 마나로 돌려보냈던 것처럼.

"짝을 지어라. 넓게 흩어져서 한번에 들어간다."



중심으로 갈수록 안개는 더욱 짙어졌다. 무언가 잘못 되었다는 것을 느낀 건 마천루의 안개 속에 뛰어든지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지르는 비명이 들려왔다. 안개 때문에 방향을 종잡을 수 없었지만, 분명 부관의 목소리였다. 비명소리를 신호로 삼은 것처럼, 아무런 기척도 없던 안개 속에서 무언가 그를 향해 달려들었다. 스니프 케이는 본능적으로 몸을 숙이며 앞으로 굴렀다.

날카로운 발톱에 걸린 어깨의 살점이 뭉텅 뜯어져 나갔다.

그는 고통을 참으며 마력이 담긴 지팡이를 휘둘렀다. 고통에 찬 울음 소리가 울려퍼지며 안개 속에서 뭔가 끈 떨어진 연처럼 바닥으로 추락했다.

스니프 케이는 자신에게 달려든 것을 바라보았다. 네 발 짐승과 새를 합쳐 놓은 것 같은 모습의 괴물이었다. 지팡이에 가격된 복부는 깊이 패여 있었고, 두 쌍의 다리와 한 쌍의 날개가 바닥을 날기라도 할듯 힘없이 퍼덕거리고 있었다.

"스니프 케이님!"

자신의 뒤를 따르던 부하가 소리쳤다. 멍청한 것! 순식간에 부하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긴 스니프 케이는 그의 입을 틀어막는 대신 위험이 감지되는 방향으로 그를 밀치는 쪽을 택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 얼빠진 부하의 표정이 보였고 이내 끔찍한 비명 소리가 울려퍼졌다. 재빨리 자리를 벗어나 마천루의 어둠 속으로 몸을 숨긴 스니프 케이는 자신이 있던 곳을 돌아보았다. 안개 속에서 괴물들이 끊임 없이 몰려들고 있었다. 고통에 찬 비명은 계속해서 사방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때론 멀리서, 때론 가까이에서. 부하들의 비명을 뒤로 하고, 그는 서둘러 마천루의 중심으로 향했다.
모든 비명을 집어삼킨 안개 속의 괴물들이 자신을 발견하기 전에.



스니프 케이는 연신 흐르는 땀을 닦아내며 깊게 심호흡을 했다. 숨을 들이쉴 때마다 폐부에 들이차는 열기는 더욱 심해지는 것 같았다.

확실하게 느껴지는 마력을 따라 움직인 방향은 마천루의 중심부였다. 그 사이 괴물들과 조우했지만, 마력을 최대한 억누르고 행동한 덕에 가까스로 별다른 충돌없이 위기를 피해갈 수 있었다. 마천루의 중심부가 가까워질수록 강대한 마력과 이를 동반한 열기가 느껴졌다. 보호를 위해 최소한의 마력으로 감싼 피부 위가 따가울 정도였다. 지면에서 뜨기라도 한 것처럼 소리를 내지 않고 움직이던 스니프 케이의 발이 마침내 멈췄다.
무너진 벽면의 그림자에 등을 기대며 스니프 케이는 터져나오는 탄성을 간신히 억눌렀다.

마침내 발견한 사도의 알은 마천루의 짙은 그림자 아래에서도 밝은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혼자가 아니었다.
용을 닮은 거대한 괴물이 보물을 수호하는 용처럼 알의 주위를 지키고 있었다. 괴물의 깃털은 붉게 불타오르는듯 일렁였고, 간혹 내쉬는 숨에서는 용광로처럼 뜨거운 열기가 쏟아져 나왔다. 저 괴물이 열기의 원인임이 분명했다.

'히카르도는?'

사도의 알은 찾았지만 아무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히카르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누구의 것인지 모를 미세한 혈흔이 바닥과 벽면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어떡해야 하나? 사도의 알을 코 앞에 두고 스니프 케이는 고민에 빠졌다. 알을 지키고 있는 괴물에게서 느껴지는 마력은 만만히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럴 때 잠깐 시선만 끌어줄 부하 하나만 있었더라도. 그걸 이용해 알을 가지고 도망친다는 작전이라도 세워볼 수 있었을 텐데. 생각에 깊이 빠진 나머지, 그는 순간 자신이 가장 경계해야할 대상의 움직임을 놓치고 말았다.

피부로 느껴지는 열기가 지나치게 뜨거워졌단 생각에 고개를 드는 순간, 개줄의 리더는 시야에 가득 찬 붉은색과 함께 자신의 몸이 거칠게 내동댕이 쳐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젠장…."

얼음처럼 찬 빗방울이 마른 뺨을 에일 듯이 두드렸다. 번쩍, 눈을 뜬 그가 숨보다 먼저 뱉은 것은 욕지거리였다. 밤의 마천루 중심, 부서진 건물 더미 틈에 아무렇게나 처박혀 있던 스니프 케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습관처럼 귀밑머리를 꽂아 넘기고 옷 매무새를 확인하는 손의 떨림이 멈출 줄 몰랐다.

금색의 별이 발하는 빛조차 희붐해진 먹색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든다. 조용히 땅을 적시던 비가 피딱지 앉은 그의 얼굴까지 씻어 내린다. 한참을 맞으며 숨을 골랐다. 속에는 여전히 씻기지 않는 것이 있어 입안이 쓰다.

사도.

그 이름의 무게야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까마득히 먼 옛날, 강력한 힘을 가지고 이 행성에 올라탔다는 이계의 존재들. 저들끼리만 알아보는 특별한 기운을 가졌다는 선택 받은 강자들.
하지만 언젠가부터 우스워진 것도 사실이다. 하루아침에 이 땅에서 모습을 감춘 자가 많았고, 그중 몇몇은 신분조차 불분명한 자들의 손에 처참히 죽임당했단 소문까지 돌았으니까. 할렘의 녀석들은 사도보단 카쉬파라는 이름에 몸을 떨었고, 고상한 척 시비를 따지고 들던 녀석들도 카쉬파의 영역 안에선 제 목숨 구걸하기 바빴으니까. 그렇다 해도…

사도, 이시스 - 프레이.

그 이름까지 얕본 것은 오만이었다. 테이베르스에서 넘어 온 괴물들의 힘은 압도적이었다. 일말의 망설임 없이 괴물들을 향해 뛰어든 '모험가'라 불리는 자의 기개 역시 높이 살 만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의 위에 '가장 높은 자'가 있었다. 모두가 탐냈던 어둠을 빨아들이며, 일련의 사건을 종결 지은 천공의 왕.
치욕스럽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도는 강하다. 개줄의 리더라 해 봤자 저 역시도 개줄에 묶인 신세. 줄을 쥔 자의 명령을 따라 이곳까지 흘러들어 온 스니프 케이는 사도는커녕 그를 추종하는 괴물 앞에서조차 맥을 못 추는, 그저 그런 카쉬파의 졸개일 뿐이었다.

"하아. 비 맞는 건 끔찍하게 싫은데 말이지."

스니프 케이는 빗물에 젖어 진흙 범벅이 된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살덩이가 떨어져 나갔던 한쪽 어깨가 욱신거리며 고통을 전했다. 돌아갈 때가 되었다. 보고를 해야겠지. 마치기도 전에 숨통이 끊길지 모른다. 취할만한 정보를 물어왔다 해도 임무에 실패한 부하를 살려 둘만큼 자애로운 분들이 아니니. 문득, 이 지팡이질 한 번에 무력하게 죽어 갔던 하찮은 벌레들의 눈빛이 스쳐 간다. 존재감 없이 사라져 간 무대 위 단역들.

쿡, 하고 자조적인 웃음이 터지려던 찰나였다.

"…히카르도?"

홱 몸을 돌린다. 내딛는 발걸음에 점점 속도가 붙는다. 분명 그 녀석의 마력이다. 코앞에서 자취를 감췄던 것이 다시 이곳, 밤의 마천루에 나타났다. 언제부터 이곳에 있던 거지? 왜 다시 이곳에 나타난 거지? 수많은 의문이 스니프 케이의 머릿속을 헤집었지만, 지금 그를 움직이는 것은 단 하나의 집념이었다.

히카르도를 찾아야 한다.

와중에도 기척을 숨기고 발소리를 낮춘다. 의식을 잃기 전, 마지막 기억 속 생생한 그 붉은 괴물의 둥지를 향해 되돌아 가고 있음을 알면서도 지체하지 않았다.
부하들을 찢어발긴 괴물의 모가지를 가지고 갈 수 없다면, 히카르도, 그놈의 생살이라도 뜯어 가는 것이 스니프 케이가 살 길이었다. 놈의 마력이 가까워질수록
본데없이 속이 들끓었다. 두려움 때문인지, 기대감 때문인지 알 수 없었다.

'여기다.'

잠시 숨을 멈추고 주변을 살폈다. 닿기만 해도 타는 듯 뜨거운 숨을 뱉던 괴물도, 밤의 마천루의 어둠을 물리치며 존재를 과시했던 사도의 알도 보이지 않았다.
가만히 땅을 적시는 빗소리만이 일정할 뿐. 천천히 숨을 내쉬며 눈을 깜빡여 본다.

아니, 있다. 사도의 알이다. 사라지지 않았다. 빛을 잃었을 뿐이다. 부서진 건물 잔해 더미 사이에 얌전히 앉아 있는 사도의 알에는 압도적인 마력도, 빨려 들어갈 듯한 에너지도 남아있지 않았다. 전에 봤을 때는 저러지 않았던 것 같은데. 난리통에 겉껍데기가 작살난 건가. 저래서야 가져가도 좋은 소리 못 듣겠는데. 안이 텅 비어서 뭐가 제대로 남아 있기나 하겠…

잠깐.

히카르도의 마력은 사라지지 않았다. 스니프 케이의 감각은 틀린 적 없다. 다시 한번 눈을 부릅뜨고 어둠을 꿰뚫듯 응시한다. 확인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다.
부서진 알껍질 속에, 낮게 웅크린 무언가를.

스니프 케이는 웃고 있었다. 카쉬파 놈들 치고 제대로 써 먹을만한 놈 없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명색이 마귀의 리더라는 자가 이토록 멍청할 줄이야. 하지만 덕분에 살았다. 험한 꼴을 좀 보긴 했지만, 그 핑계로 쏟아지는 업무를 잠깐 미룰 수도 있을 것이다. 유유히 빗속을 걸어 깨진 알껍질 앞에 서고 보니, 이 고맙도록 덜떨어진 녀석에게 적당한 아량을 베풀어 주는 것도 좋겠다 싶었다.

"히카르도."

돌아오는 답이 없으리라는 건 예상했다. 지팡이 끝에 달린 뱀의 머리를 만지작거리며 되새겼다. 쫓는 자의 가장 큰 미덕은 언제나 기다림에 있다.

"이렇게 어설프면 어쩌잔 거야. 이래서야 내가 못 본 척 하기도 민망… 컥!"
알껍질에서 무언가 팍 하고 튀어나오더니, 별안간 스니프 케이의 숨통을 틀어쥐었다. 버둥거리며 만져보니 손, 분명 손이었다. 저항할 수 없는 강력한 아귀힘이 스니프 케이의 모가지를 잡고 천천히 들어 올렸다. 숨은 쉬어지지 않는데, 폐 속은 가득 채워지는 것 같다. 내장이 심장을 휘감는 듯한데, 두 눈은 감을 수가 없다.
부릅뜬 채 내려다본 알껍질 속, 그 어둠 안에 분명 그 녀석이 있었다. 언제, 왜, 어떻게…. 멀어져 가는 의식 속에서도 놓을 수 없는 물음들이 빗소리에 묻혀 사라져 갔다.

얼음처럼 찬 빗방울이 목덜미를 에일 듯이 두드렸다. 번쩍, 눈을 뜬 그가 입꼬리를 찢으며 소리 없이 웃었다. 밤의 마천루 중심, 부서진 사도의 알 앞에 아무렇게나 쓰러져 있던 스니프 케이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비에 젖은 얼굴을 한 손으로 대충 훔친다. 관자놀이를 툭툭 치며 귓바퀴에 맺힌 물을 턴다. 목 부분에 감긴 귀찮은 버클은 뜯어 버리고, 어깨를 한 번 으쓱 하고, 부서진 알 위에 마른 손을 올린다. 지팡이를 쓰지 않고도 흘려보낸 마력에 알껍질이 반응하며 몸을 띄운다. 이윽고, 그가 뒤돌아본다.

돌아갈 때가 되었다.



천공의 둥지로


---------------------------------{구버전}---------------------------------
하늘을 뒤덮었던 검은 기운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프레이 님께서 이시스 님의 힘을 흡수하고 검은 기운을 흔적도 없이 모두 흩어 놓으신 덕분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모험가님의 조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리뉴얼}---------------------------------
케이트의 뒤로 낯익은 인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얀 긴 머리카락을 가진 외눈의 소년, 아서였다.
모험가님... 입었던 상처는 깊지 않아서 금방 회복했습니다. 도움을 드리고 싶었는데... 폐만 끼친 것 같아 송구스럽습니다. 하하...
이렇게 다시 뵐 수 있게 되어서 다행입니다.
하늘을 뒤덮었던 검은 기운이 모두 사라졌습니다.
프레이 님께서 이시스 님의 힘을 흡수하고 검은 기운을 흔적도 없이 모두 흩어 놓으신 덕분입니다.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모험가님의 조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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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빛 무덤에서 아서와 대화하기



<퀘스트 완료>
지금 프레이 님께서는 마지막 결전이 벌어졌던 천공의 둥지에서 회복하고 계십니다.
이시스 님의 힘을 흡수하긴 했지만, 정화되지 않은 기운을 그대로 받아들이기에는 무리가 있으셨는지, 몸 안에서 요동치는 이시스 님의 기운을 억누르고 정화하는데 온 힘을 쏟고 계십니다.
그래도 우려했던 것처럼 기운에 사로잡히거나 하지는 않으신 것 같습니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정화된 힘을 받아들이며, 더욱더 위엄있는 모습이 되어가고 계십니다. 정말 다행입니다.
이것 말고도 모험가님께서 들으시면 기뻐하실 소식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보다는 프레이 님을 통해서 직접 들으시는 것이 좋겠죠.
마침, 프레이 님께서 모험가님을 만나고 싶다는 전언을 주신 참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저와 함께 프레이 님을 만나 뵈러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재회


가주신다고요? 감사합니다! 분명히 프레이 님께서도 기뻐하실 겁니다.
그럼 저는 한 발 먼저 밤의 마천루로 가있겠습니다. 모두에게 사실을 알리고, 천공의 둥지로 향하는 길목에서 모험가님을 안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기쁘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밤의 마천루에 있는 천공의 둥지에서 프레이와 만나기



모험가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길은 이쪽입니다.
모험가님이 오신다는 소식을 듣고 프레이 님께서 기뻐하셨습니다. 어서 올라가십시오. 저도 뒤따르겠습니다.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만나게 되어 기쁘구나.
너의 조력으로 오랜 세월 나의 마음을 괴롭혔던 커다란 근심을 덜어낼 수 있었다. 이로써 나는 다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많은 희생을 치렀다. 어둠을 극복하지 못한 자들은 끝내 목숨을 잃었고, 어둠 속에서도 빛을 찾고자 저항했던 이들은 목숨은 보전했지만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이는 따르는 자들에게 제때 손을 내밀어 주지 못한 나의 잘못이니, 이들을 깨우기 위해서 온 힘을 쏟을 것이다.
절대로 프레이 님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프레이 님을 제대로 보필하지 못한 탓입니다. 저의 실수로 블라섬 님과 알렉산드라 님을 알케토에게 내어주지만 않았어도…
나를 따르는 이여, 그렇지 않다. 너는 최선을 다했다. 예측할 수 없는 일을 맞이한 것을 실수라 하지 않으니… 스스로를 책망하지 마라.
프레이 님…!
프레이 님의 말씀이 맞다. 작은 짐승!
프레이 님도 꽃의 여왕도 천궁도 너를 원망하지 않는다. 그렇지 않나?
(고개를 끄덕인다.)
아서, 모두의 말이 맞아요. 너무 자신을 책망하지 마세요.
블라섬 님과 알렉산드라 님은 곧 깨어날 거예요. 두 분을 감싼 이 꽃들이 몸을 낫게 하고 정신을 되돌려 줄 거예요.
크흑…



<퀘스트 완료>
(마음의 짐을 조금 덜었기를…)
그러고 보니 알케토… 아니, 프렉세스는 어디에?



마지막 불씨


프렉세스는 정신을 되찾자마자 테이베르스로 날아올랐다.
테이베르스는 균형을 잃었다. 자드라콘의 빈자리로 혹한이 몰아쳤고, 트리투라의 부재로 바람길이 혼란해졌다. 날개를 가진 이들은 조디악의 인도를 받지 못하게 되었으며, 대지는 쌘비구름이 내리는 비를 맞이하지 못하게 되었다.
본래 모두의 힘으로 유지했던 곳이었다.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제각각의 힘으로 풍요에 기여했다. 하지만 무너지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프렉세스는 모든 것이 자신의 손으로 벌인 일이라는 사실에 괴로워했고, 모두를 고통스럽게 한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고 했다.
살아남은 모든 이가 만류했지만, 그는 끝끝내 테이베르스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내가 돌아올 날까지 목숨을 걸고 멸망을 막으며 기다리겠다고 했다.
나라도 멀쩡했으면 프레이 님을 태우고 날아갔을 텐데…! 바닥에 떨어진 스레니크론의 비통함을 이제야 알겠어!
거짓되지 않은 프렉세스 님은 그런 분이셨군요. 그분 자신께서 가장 고통스러우셨을 텐데…
알겠어요. 저도 홀로 싸우고 계실 프렉세스 님을 위해서라도 더 힘을 낼게요.
블라섬 님, 알렉산드라 님, 그리고 스레니콘 님이 회복하시면 단숨에 그분을 도우러 가실 수 있겠죠.
저도 프레이 님을 비롯한 모든 분의 회복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습니다. 무엇이든 말씀해주십시오.
테이베르스를 멸망에서 구하고, 프렉세스를 되돌릴 수 있는 것은 우리뿐이니… 곧 어긋났던 것들은 다시 제자리를 찾고, 순리대로 흐르게 될 것이다.
모험가여. 너에게는 큰 빚을 졌다. 무엇으로도 이 커다란 은혜를 메울 수 없다.
이에 하나의 약속을 하려고 한다. 네가 마계에 머무는 동안 창공으로 날아올라 가장 높은 곳에서 너를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네가 감당할 수 없는 위기가 닥쳤을 때, 모든 힘을 쏟아 너를 지켜줄 것이다. 설령 그 상대가 나와 같은 사도라 할지라도…
저도 프레이 님의 뜻에 따라 언제라도 모험가님을 돕겠습니다. 또한, 어떤 일이 있어도 저를 비롯한 프레이 님의 추종자들이 모험가님에게 무기를 겨누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모험가님의 그 은혜는…
표정을 일그러트린 아서는 하던 말을 멈추고 프레이를 바라보았다.
프레이는 밤의 마천루 너머에서 느껴지는 무언가를 주시하고 있었다.
잠시의 침묵…
곧 침묵을 깬 프레이가 모두를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이시스가 남긴 작은 불씨가 남아 있구나.
!
분명 이시스가 깨고 나온 알의 껍질이 머금고 있는 기운. 그대로 두면 자연히 흩어져 사라질 것이나, 이를 누군가가 취한다면 커다란 불꽃으로 키워낼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이시스의 기운을 머금은 알껍질이 이동하고 있다. 기운에 이끌린 누군가가 이를 취해 달아나고 있다는 말이겠지.
모험가님, 막아야 합니다. 커다란 싸움 직후라 모두가 힘이 빠져있습니다. 이럴 때에 또 다른 혼란이 일어난다면 회복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겁니다.
아직은 멀지 않은 곳에 있다. 하지만 이 속도라면 얼마 지나지 않아 손을 쓸 수 없을 정도로 멀어지겠지.
모험가여, 움직일 수 없는 나를 대신해 이시스의 마지막 불씨를 꺼주었으면 한다. 싸움의 열기가 식지 않은 때에 또 다른 부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를 지켜준 너의 힘에 기댈 수 밖에 없구나.
모험가님, 저도 뒤따르겠습니다. 프레이 님에게 받은 이 힘이 있으면 수월하게 뒤를 쫓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럼 저는 잿빛 무덤으로 돌아가 준비를 하고 있겠습니다.



잿빛 무덤에서 아서와 대화하기



<퀘스트 완료>
모험가님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체불명의 흔적들


아직 멀리가지 못했을 때 잡아야 합니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아서와 함께 이시스의 기운을 쫓아가기



이상합니다. 기운이 서서히 옅어지고 있습니다. 마치 어비스로 빨려들어가는 듯한 느낌…
이 기운이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서둘러 쫓아야 합니다.



윽, 이건 카쉬파 단원들… 서로 싸움이라도 한 걸까요?
기운이 거의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어서 서둘러 가시죠.






<퀘스트 완료>
이 자는 카쉬파 척살조 '개줄'의 리더인 스니프 케이입니다. 이스트 할렘에 있어야 할 자가 어째서 여기에 죽어있는 것인지…
으윽, 끔찍한 상처입니다. 엄청난 괴물에게 습격 당했거나 강력한 마법에 당한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상합니다. 마치 무언가가 가슴 안에서 찢고 나온 듯한…



할렘의 중심, 이스트 할렘


더는 기운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앞은 카쉬파의 본진이 있는 할렘의 중심 이스트 할렘. 경계를 넘었다가는 카쉬파와 더 큰 충돌이 일어날 겁니다.
안타깝지만 이 이상은 추적이 힘들어 보입니다. 우선 잿빛 무덤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잿빛 무덤에서 아서와 대화하기



<퀘스트 완료>
이시스 님의 기운이 강력한 어비스의 마력 뒤로 숨어버렸습니다. 아니, 어비스 안으로 사라졌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겁니다.
이시스 님이 프레이 님에게 흡수되어 기운이 정화되는 중에 알껍질에 담겨있던 기운은 말그대로 작은 불씨에 불과합니다. 지금 상태로는 큰 영향을 미칠 수 없을 겁니다.
하지만 프레이 님의 말씀처럼 누군가가 이 불씨를 커다랗게 키우게 된다면 또 다른 싸움을 준비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누군가에 의해서 옮겨진 알껍질, 사라진 불씨, 이상한 상처를 가진 카쉬파 단원들의 시체들… 도대체 어떤 일이 또 벌어지려고 하는 것인지…
우선 저는 잿빛 무덤에 머무르며, 모든 사건이 연관된 경계 너머의 이스트 할렘을 주시할 생각입니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장 최선은 이것 뿐입니다.
저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직은 혼자의 힘으로 감당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천공의 둥지에서 프레이 님께서 지켜보고 계십니다. 아무리 위협적인 적이라도 함부로 경계를 넘지 못할 것입니다.
모험가님께서는 도움이 필요한 곳으로 떠나십시오. 이스트 할렘에서 불온한 바람이 불어올 때, 다시 모험가님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기쁜 소식이 있습니다. 블라섬 님과 알렉산드라 님께서 깨어났다고 합니다! 정말로 다행입니다.
이 모든 것이 프레이 님과 케이트 님, 그리고 두 분을 걱정해주신 모험가 님 덕분입니다.
곧 잿빛 무덤에 두 분이 돌아오신다고 하십니다. 떠나시기 전에 두 분을 만나보십시오. 분명히 반가워 하실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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