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마르크, 제국의 실험장

제 1 장. 비명

『아악!!』

귀를 찢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소리에 나는 정신이 들었다.

<어떻게... 된거지..?>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기도 전에 눈에 들어오는 광경은 수십, 아니 수백마리의 붉은 색 루가루들에게 둘러싸여있는 한무리의 사람들이었다. 그 한가운데에는 눈에 익은 격투가 한명이 쓰러져 있었다.
내 정신을 차리게 만들었던 비명소리는 아마 그녀의 것이었던 것 같다.

『저.저건 패리스? 그래 난 패리스에게...』

그 때, 쓰러져 있는 패리스의 뒤쪽을 노리는 루가루 한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벌떡 일어나 그 루가루를 향해 몸을 날렸다.


제 2 장. 독 (纛)

나는 독에게 알수없는 끌림을 가지고 있었다 . 그 향긋한 냄새와 치명적인 아름다움.
"어린 시절 숲 속에서 독거미를 입에 물고 죽어가던 강아지를 발견한 적이 있었다.
내 품안에서 부들부들 떨면서 고통스러워하던 그 강아지. 나는 울었지만 단지 강아지가 불쌍하고 슬퍼서 만은 아니었다.
어쩌면 평생을 함께할 동반자의 존재를 만난것에 기쁨과 두려움을 동시에 느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죽음… 죽음이라………>

그 이후로 [독] 의 세계에 대한 내 연구는 집착에 가까워졌다. 격투가의 길로 들어서기를 다짐하고 몸을 단련하면서도 나는 끊임없이 각종 독을 수집하며 연구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왜 그런것인지는 솔직히 그때가 오기까지는… 몰랐다.

얼마전 나는 내가 그동안 모은 갖가지 독을 들고 헨돈마이어 골목에 사는 로톤 영감을 찾아갔다. 영감은 놀라는 눈치였다.
하긴 누구든 놀라지 않겠는가.

『이 모든 독을 자네 혼자서 모은 것인가? 놀랍구먼』
『영감. 이것들을 한방에 쓸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한방에 쓴다. . . 옳지. 방법이 있지. 방법이 있어.』

로톤은 온갖 잡동사니가 어지럽게 널려있는 창고로 들어가더니 한참을 부시럭거렸다. 차 한잔 마실 시간이 지났을까. 로톤은 버튼이 달려있는 달갈 크기만한 장치와 마스크로 보이는 물건 두개를 들고 나왔다.

『자 이 마스크를 쓰게. 자네가 모은 독들을 정제한 뒤, 이렇게 비휘발성 알콜이랑 섞어서. . .』

로톤은 내게 마스크를 건낸 뒤 자신도 마스크를 쓰고나서 내 독을 한데 모아 알콜인 듯 보이는 액체와 섞었다. 나는 마스크를 쓰면서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이 조그만 분사기에 넣고 뿌리면. . . .』

분사기에서는 내 독들이 기체가 되어 뿌려졌다. 뿌려진 기체는 주변에 넓게 퍼지더니 주변의 시야를 가릴 정도의 안개가 되었다.

『이건 독안개로군. 이야. 영감. 이거 멋진 걸? 고마워!』
『이 독안개 속에서 보통 생명체들은 수초를 견디지 못할 것이라네. 자네 자신이 해를 당하지 않으려면 이 마스크를 꼭 챙기게. . .』

나는 푹 눌러썼던 마스크를 벗고 웃으며 이야기했다.

『나는 이딴 거 필요없어. 그동안 수천가지의 독으로 단련된 이 몸에 넨의 힘을 조금 더하면 이 정도는 가뿐하지.』 마스크 속 로톤의 얼굴은 꽤나 놀란 표정이었을 게다.
『그. . .그렇구먼. 헌데 이렇게 독을 분사하게 되면 재료가 꽤 많이 들꺼야. 자네가 가지고 온 것만으로는 서너번 밖에는 사용하지 못하겠네 그려.』
『그럼 독을 좀더 구해야 겠는데. . . 독을 대량으로 구할 곳이 없을까?』
『한 곳이 있긴 한데. . .』
『어딘데? 응?』 로톤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엘븐 가드로 가게.』
『엘븐 가드? 설마 그 멍청한 고블린들이 쓸만한 독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건 아니겠지?』
『그럴리가 있나. 요즘 엘븐 가드 어디에선가 붉은 색 루가루가 발견되는데 자네에게 그 독니가 아주 쓸모가 있을 걸쎄.』
『붉은 색 루가루?』
『그렇다네. 저번에 몇몇의 모험가들이 우연히 잡게되서 내게 연구를 의뢰한 적이 있었지.
일반 루가루들의 변종으로 처음 보는 녀석들이었는데 하여간 그놈의 독니는 아주 큰데다가 엄청난 맹독을 담고 있더군.
그놈 독니 하나의 독이 자네가 모아온 독보다 더 많고도 강한것이었다네...』
『그런 놈이 있었군. 고마워. 당장 떠나야겠어.』
『여보게… 하여간 조심하게.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모험가들이 엘븐 가드를 들락거렸는데, 이제와서 그런 놈이 발견되었다는 것은 그놈들이 최근에 생긴 변종들이거나 아니면…… 』
『아니면?』
『그동안 놈들을 발견한 사람은 한명도 살아돌아오지 못했다는 것일 테니까. . .』
『걱정마. 영감! 어쨌든 정보 고마워~』

나는 왠지 들떠서 허둥지둥 짐을 챙겨서 곧바로 로톤의 실험실에서 나왔다.

"엘븐 가드의 입구에는 아직도 초보 모험가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게다가 저 멀리서 익숙한 단진의 목소리마저 들렸다.

『자 돈 놓고 돈 먹기~』"

'단진 이놈은 언제까지 풋내기들을 등쳐먹고 살 작정이지?' 속으로 웃음을 참지 못하면서 단진 앞을 지나갈때였다.

『자 방금도 한 손님께서 크게 한몫 잡고 가셨답니다. 당신도 도전하세요~ 내 피끓는 젊음을 어떻게 하려나? 내 마음도 지나가는 멋진 아가씨 마음도 루가루들처럼 붉기만 하다네~ 자 돈을 거세요~』

나는 흠칫 놀라서 다짜고짜 그의 멱살을 쥐고 따지듯 물었다.

『너, 붉은 색 루가루에 대해 알고 있어?』

순간, 단진의 덮어쓴 가면 속의 얼굴이 웃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붉은 색은 쉽게 물이 드는 색. 당신의 마음도 이미 반은 물들어 있네요~ 완전히 물들어 버린다면 다시는 돌릴 수 없지요.』

나는 쥐었던 멱살을 풀고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자자. 그냥은 안돼요. 나는 나의 행운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에게만 정보를 준답니다.』
『행운 시험?』
『모든 일은 뿌린만큼 거두는 법! 투자를 한 사람에게 행운 시험에 도전할 기회를 드리지요. 오늘은 아가씨께 제 모든 행운을 드릴테니 한번 도전해봐요~』

쳇! 더러운 상술이로군. 나는 잠깐 피어났던 의아심을 훌훌 털고 그길로 붉은 색 루가루들을 찾으러 달려갔다.


제 3 장. 만남

"끝도 없이 늘어선 나무들 사이에서 길을 잃고 헤멘지가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아직도 붉은 색 루가루의 자취를 찾아다니고 있었다.

""헉헉. . . 로톤 이 영감이 헛소리한 거 아냐? 조금만… 쉬어야겠다.."" 잠시 몸을 뉘이는 순간 바로 그때였다."

내 눈앞을 휙하고 지나간 녀석은 매끈한 몸매의 루가루! 그것은 붉은 색이었다.

『찾았다, 요녀석!』

나는 시야에서 놓칠세라 벌떡 일어나 그 녀석의 뒤를 쫓았다.
한참 동안이나 그 루가루 녀석이랑 실랑이를 벌였다. 이 녀석은 잡힐 듯 말 듯 한걸음 차이를 유지하며 나무들 사이로 재빠르게 도망다녔고 나는 계속 그 한걸음 차이를 극복하지 못하고 안타깝게 그 녀석을 손에서 놓치고 있었다.

『이녀석이. . . 혹시 나를 유인하는 거 아닐까. . .?』

분명 의심이 들만한 상황이었지만, 녀석을 쫓는 것 이외에는 방법이외에는 뾰족한 수가 없었다. 빽빽한 나무들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넓은 공터에 다다르자 그 루가루는 더이상 도망갈 곳을 잃고 우물쭈물 거리고 있었다.
나는 됐다 싶어서 빠른 몸놀림으로 그녀석을 낚아챘다."

『잡았다! 어라? 이놈 힘이 보통이 아닌데?』

가까스로 손에 넣은 녀석을 깔고앉아 무차별 공격을 퍼부어 간신히 제압한 그때 비로소 주변의 환경이 눈에 들어왔다.

『이곳은... 뭐지?』

눈앞에 보이는 불타버린 건물들. 커다란 공장같은 건물들이 흉물스럽게 몸뚱아리를 드러내고 있었다.
건물 여기저기에는 기분나쁜 덩쿨들이 엉켜져 있었고, 을씨년스러움을 더해주는 바람 소리가 나를 비웃고 있는 듯 했다.

'기분 나쁜 곳이군. 빨리 독이나 모아 여길 떠야겠다.'

나는 손에 잡고 있는 루가루 녀석의 입을 열어 빈병에 독을 짰다. 그때 누군가 소리쳤다.

『헤이, 조심해!』

그 사람은 번개같은 몸놀림으로 내 뒤쪽에 나타났다. 뒤를 돌아보니 한 여자가 격렬하게 발버둥치는 루가루 한마리를 움켜쥐고 있었다.

<이 여자도... 격투가로군?>

『이봐. 이 주변에 온통 루가루들이 있다구. 그렇게 허술하게 서있다간 순식간에 루가루들의 밥이 될꺼야.
잘봐.』

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루가루를 내 뒤쪽의 숲 속으로 던졌다.
그러자 숲 속에서 수십 마리의 루가루들이 붉은 눈을 번뜩이며 모습을 드러냈다.

『이놈들은 아마 너를 노리고 뒤쫓아온 녀석들일껄?』

말이 끝나기도 무섭게 그녀는 그 루가루 무리의 한가운데로 뛰어들어가더니, 한바탕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그녀의 싸우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군더더기 없는 움직임. 적의 약점을 가차없이 공략하는 대범한 공격 . 싸움에 임하여서는 연민따위는 가지지 않겠다는 단호함. 모르는 사람이 보기에는 그저 마구잡이식 움직임으로 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래 나는 안다. 저게 바로 오로지 실전을 위한 싸움으로서의 최고 경지다! 그리고 그렇게 루가루들은 힘없이 쓰러졌다.

『패리스 저쪽이야!』

남자들 한무리가 그녀 뒤를 따라오며 소리쳤다.
그들은 쇠몽둥이, 각목 등으로 무장하고 있었다.

<패리스라면 시궁창 공주 패리스!?>

시궁창 공주 패리스라면 모든 스트리트 파이터가 우러러보는 존재다.
그녀를 여기서 만나게 되다니? 나는 패리스와 그녀의 패거리들과 뛰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얼른 쓰러진 루가루 몇마리에게서 필요한 만큼의 독을 짜낸 후 곧바로 패리스가 들어간 눈 앞의 폐허로 뛰어 들어갔다.

제 4 장. 단풍에 물들다.

내가 때려 눕힌 붉은 색 루가루들이 여기저기 쓰러져 있었다.
쓰러져 있는 한무더기의 루가루들. 몇마리나 될까. 열마리? 스무마리?
패리스의 패거리들을 찾아서 이 폐허로 무작정 들어왔지만 눈 앞에 보이는 것은 온통 붉은 색 루가루들 뿐이다. 살의로 번뜩이는 루가루들의 눈빛들만 아니었다면, 이곳은 노을 빛으로 한껏 물든 단풍나무 숲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눈부신 붉은 색을 자랑하며 민첩하게 움직이는 루가루들 몸놀림에 현혹된 것일까?
아까부터 머리가 어지러웠다.

<헉. . . .헉. . . . 이것들.. 끝도 없이 달려드는 군. 그런데 패리스는. . . 어디 있을까.>

정신없이 공격해오는 루가루들의 발톱을 본능적으로 피하며 한마리씩 때려눕히다가 문득 새로운 기분에 휩싸였다.
내 발에 몬스터들이 걸리는 느낌. . . 살집을 파고 드는 나의 주먹. 루가루들의 질러대는 비명소리.

"그래 내가 오늘 너희들과 한껏 즐겨주마!!!'

나는 눈앞에 닥치는 대로 몬스터들을 처치해 나가며 쾌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까의 피곤함은 온데간데 없이 몸이 갈수록 가벼워지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 나는 강하다. 나는 길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리고 크게 웃었다. 나는 강하다. 나는 강해. 내 피들이 모두 거꾸로 솟는다. 나는 파괴의 신이되어 그저 손에 걸리는 것은 무엇이든 때리고 부술 뿐이었다. 그래 이대로 영원히 무언가 때려 부수고 싶다. 내 몸에 흐르는 핏방울 하나하나가 큰 의미가 되고 싶다! 갑자기 높다란 하늘을 향해 괴성를 지르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그때 누군가 크게 휘두르고 있는 내 손목을 잡았다."

『이봐. 그 정도에서 그만하지 그래?』

이건. . .패리스의 목소리?

『헤이. 그러다가 우리편까지 다치겠어. 그. .그런데 너, 피부가 어떻게 된거야?』

그녀가 잡고 있는 내 팔을 보았다. 팔은 온통 붉은 색 반점으로 가득했다.

『흠?』

고개를 들어 패리스와 눈이 마주치자 패리스는 흠칫 놀라며 잡았던 내 손목을 놓고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이녀석. 시뻘건 눈을 보니 제 정신이 아닌 모양인데? 아마 캡슐을 먹지 않은 모양이군.』

패리스는 저쪽에 있는 자신의 패거리들에게 소리쳤다.

『헤이. 거기 누가 변이면역캡슐 가진 사람 없어?』

그러더니 내게 이야기했다.

『너 애송이. 캡슐없이 여기에 들어왔다간 딱 네 꼴이 되지. 일단 목숨이 불쌍해서 이걸 주겠는데, 여기서 더이상 버텨내지 못할 거라면 방해나 하지 말고 집에가서 편히 주무시지? 우린 오늘 할일이 아주 많거든.』

나는 캡슐을 받아들고는 패리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의 뒷모습은 붉은 색이다. 단풍잎처럼,루가루들처럼, 내 손목처럼, 이 세상처럼.

"패리스. . . 패리스여. . 그녀는 강하다.
그녀는 모든 스트리트 파이터들의 목표다. 내가 이길 수 있을까? 나도 강하지 않은가. 그녀를 이겨보고 싶다!
나의 피는 어느덧 내가 통제할 수 없을만큼 끓고 있었다."

나는 그녀의 이름을 크게 부르며 선전포고 한 뒤, 다짜고짜 그녀에게 주먹을 날렸다. 아까의 어지럼증은 가시지 않았지만, 내 몸은 어느때 보다 가볍게 움직였다. 내 주먹에 공중으로 뜬 패리스는 가볍게 공중제비를 돌더니 사뿐히 바닥에 착지하며 말했다.

『이 녀석이! 정신차려 임마.』

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 가차없는 발차기가 나갔다. 하지만 패리스는 몸을 비스듬히 눕히더니 재빠르게 피해냈다.

『… 너도 뒷골목 싸움꾼. 스트리트 파이터로군?』

패리스가 말하는 사이 나는 빠르게 주먹을 내지른 뒤, 연속으로 발차기를 날렸다.
패리스는 광폭하게 내지른 내 마지막 발차기를 한쪽 팔로 묵직하게 막으면서 멀리 튕겨져 나갔다. "

『어쭈? 제법인데?』

나는 그녀가 쉴틈을 주기 않고 직선적으로 공격해 들어갔다. 하지만 패리스는 아까와는 비교도 할수없이 빠른 움직임으로 내 공격을 모두 피해내고 있었다.

『분명히 괜찮은 움직임이지만 말이야. 조금은 머리를 식히고 공격해 보는게 어때?.』

뒤쪽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듣고 뒤를 돌아보려는 순간, 갑자기 눈앞에 강렬한 통증이 찾아왔다.

『치잇… 모래를 던진거냐?.』
『자. 이만 하자구. 난 할일이 많거든.』

난 가만히 서서 그녀의 움직임을 느껴보려 하였다. 느낌뿐인지는 모르지만 내 모든 감각은 그 어느때보다 선명했다. 느껴진다. 그녀가!

『히얍!』

뒤에서 급습하는 나의 공격을 가뿐히 피해낸 패리스는 무언가 마음을 먹었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이 녀석, 그냥 놔두면 안되겠는데?』

나는 재차 공격을 가했다. 몽롱한 정신이었지만 그때 내가 펼친 공격들은 정말 최고였다.
신속하고 깔끔한 움직임. 지칠 줄 모르는 체력. 이런 움직임을을 펼쳐내는 나 스스로 놀라고 신기해하면서 점점 신이 났다.
하지만 패리스는 그런 내 공격을 모두 여유롭게 무마시키고 있었다. 실력의 차이는 명백했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잖은가! 나는 크게 위협적인 움직임을 취하여 거리를 벌린 뒤, 제자리에 서서 가만히 느껴보기 시작하였다.

" 앞이 보이지 않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그녀의 움직임은 너무나 분명하게 느껴졌으니까.
이번엔 왼쪽에. . . 느낌이 왔다!! 얼굴 왼쪽편으로부터 날카로운 살기가 나를 향하는 것을 느끼고 나는 급히 몸을 비틀면서 피했다."

『흐음?.몸은 꽤 단련해 놓은 모양이구나? 하지만 우리같은 뒷골목 싸움꿈들은 무술하는 광대가 아니거든… 』

이번엔 오른쪽이로군. . . . . 나는 그녀의 움직임을 모른 척하며 무방비 상태인 듯 움직였다. 예상보다 빠른 타이밍에 패리스의 주먹이 날아들어왔다.
나는 그 주먹을 몸을 젖혀 피하면서 품안에 있던 화약을 꺼냄과 동시에 그녀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잡았. . . ! 큭...』

그러나 내가 잡은 것은 찢겨진 그녀의 옷이었다.

『오호? 화약을 쓰네? 내 전법이 많이 퍼졌나본데... 이번 작전은 아주 좋았어. 이제 좀 화가 나려고 하는데 장난은 그만 해볼까?』

흐트러진 자세를 갖추려고 균형을 유지하는 순간 귓가에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세상을 살아온 일분 일초마다』

나는 기합을 지르며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주먹을 뻗었다. 그러자 저 멀리에서 또 목소리가 들려왔다.

『죽을 고비를 넘기며 살아온 나야.』

귀신. . . 이건 분명히 귀신이다. 모양은 있지만 잡히지 않는다.

『지금 네 처지는 딱하지만,』

나는 짐승같은 괴성을 질렀다. 이제 온몸을 휘감고 있는 숨막힘을 좀 덜 수 있으려나.

『미안하게도 난 지금 너를 때려 눕혀야겠다.』

나의 숨막힘은 공포. 바로 공포였구나.

『이게 바로 내가 좋아하는 불꽃놀이』

뒤를 돌아보려던 내 목덜이가 들어올려지며 눈앞에 자욱히 화약이 뿌려지는게 느껴졌다. 숨을. . 숨을 쉴 수가 없다.

『형식에 얽매인 바보들이 굳이 붙인 이름. 일발 화약성이다!』
『콰쾅. . . . .』

귀를 찢는듯한 굉음과 함께 나는 이제껏 보지 못한 광경으로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을 느꼈다.
붉은 빛 하늘에 한껏 토해낸 나의 붉은 색 핏 방울. 붉은 색 피부와 붉은 색 루가루들. 그래 모든 것이 단풍에 물들었구나.
나는 너무나 붉게 물들어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떨어지는 낙엽처럼 공중에서 한껏 흩날렸다.
붉게 물든 단풍잎들이 내 몸으로 우아하게 떨어져 내렸다. 시간이 느리게 흘러가던 세상은 내 몸이 땅에 떨어지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다시 정상으로 돌아왔다. 나는. . . 좀더 우아할 수는 없었을까. . ."

『패리스. 이녀석 그냥 이대로 놔둘꺼야?』
『아마 이 정도로 죽을 녀석은 아닐꺼야. 그냥 저 녀석한테 캡슐이나 먹여둬. 이대로 두면 이 녀석도 여기 실험장의 영향으로 그대로 폭주해서 몬스터가 되어버리겠지. 그럼 우리한테도 골치 아파져.』

실낱같이 남아 있는 내 정신을 비집고 그 패거리 중 한명이 내 목구멍으로 알약같은 걸 쑤셔넣었다.

『자. 우린 이만 친구들을 구출하러 가자.』

멀어지는 발자국 소리를 들으며 난 정신을 잃었다.


제 5 장. 연쇄폭발

『아악!!』

귀를 찢는 듯한 날카로운 비명소리에 나는 정신이 들었다.

<어떻게. . . 된거지. . ?>

정신을 차리려고 애쓰기도 전에 눈에 들어오는 광경은 수십, 아니 수백마리의 붉은 색 루가루들에게 둘러싸여있는 한무리의 사람들이었다. 그 한가운데에는 눈에 익은 격투가 한명이 쓰러져 있었다. 비명소리는…
아마 그녀의 것이었던 것 같다.

『저. . .저건 패리스? 그래. . . 난 패리스에게. . . . .』

그 때, 쓰러져 있는 패리스의 뒤쪽을 노리는 루가루 한마리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몸을 벌떡 일으켜 그 루가루를 향해 몸을 날렸다. 그 루가루가 눈 앞에서 패리스를 덮치려는 순간, 나는 바닥에 있던 돌 하나에 넨을 실어 그 루가루에게 힘껏 내리쳤다. 무지막지한 소리와 함께 루가루 무리들이 우수수 흩어졌다.

『어. . .? 너..너는?』

나는 패리스에게 쓴 웃음을 한번 지어보이고는 패리스의 패거리들을 쫓고 있는 붉은 색 루가루 무리 속으로 뛰어 들어가며 넨을 실어 고함을 질렀다.

『이 빨강 말코들아 다 여길봣!!!』루가루들이 순간 움찔하며 내게 몰려들자. 나는 주위의 사람들에게 외쳤다.
『다들 죽고 싶지 않으면 내 곁에서 멀리 떨어져』 내가 무언가 할 것을 느꼈는지 모두들 신속하게 내게서 멀어져 가자 고맙게도 루가루들은 모두 모여 내 주변을 둘러싸고 으르렁 거렸다.
사람들이 다 피한 것을 확인한 나는 로톤이 준 분사용 독뭉치를 꺼내들었다.

<그래.. 한번 해보는 거다.>

그리고선 나에게 달려드는 루가루들을 피해 높게 뛰어오르며 그 독뭉치를 아예 바닥에 던져 터트렸다.
독안개는 분사기로부터 터져나와 마치 이른 새벽 안개처럼 넓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그래 이 향긋한 냄새.>

나는 독안개 속에서 넨의 힘으로 독기운을 버텨내며 안개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루가루들을 한마리씩 처치해 나갔다.
저 멀리서부터 패리스 패거리들의 승리의 환호성이 들려왔다. 그러나 내 마음은 다급했다.

<아냐… 이대로면 독의 효력은 전부 사라져버려. 시간이 부족해… 어떻하면 좋지?>"

"아직 반도 넘게 남아있는 루가루들…
점점 엷어지는 독안개를 느끼며 마지막 순간을 각오했을때…
순간 나는 내 눈앞을 보랗빛으로 물들이고 있던 독안개 속에서 오랜 옛날부터 나와 함께 있던 누군가의 목소리를 들었다."

<… 안녕 그동안 고마웠어… 이제 그만 날 놓아줘… >

"나는 본능적으로 그 목소리가 원하는 것을 알았다.
품속에 숨겨둔 화약가루와 함께 눈앞의 루가루 한놈의 목을 낚아채자 아주 옛날부터 느꼈던 낯설히 않은 존재를 확실히 확인했다..
뺨을 타고 한방울의 눈물이 느껴지자 나는… 나지막한 한마디를 입술에서 흘려보냈다. "

『안녕… 고마웠어... 그리고 사랑해…』

눈앞에 낚아챈 루가루의 동공이 경악으로 가득찬 걸 느꼈을때 화약이 폭발하고 온몸의 넨이 동시에 불타올랐다.

『콰콰콰쾅!』

폭발은 내 손끝에서 시작되어 독안개 전체로 연쇄적으로 이어지며 하늘이 찢어질듯 울부짖고 있었다.
천지가 진동할 듯한 폭발이 휘몰아친 자리. 그곳에는 까맣게 타버린 루가루들의 시체더미와 지쳐서 쓰러져가는 내 몸뚱아리만이 남아있었다.
이어서 들려오는 환호 소리.

『무모한 녀석이로구나 너.』

어느샌가 내 옆에는 부축을 받고 서있는 패리스가 보였다.

『네가 살아남았던 건 그저 운이 좋았던 거야. 다른 이유는 없어.』

나는 내가 살아난 이유를 알고 있었기에 뭐라 말하려 했지만 금방이라도 쓰러지려고 하는 몸이었기에 그저 가만히 듣고 있을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패리스. 싸늘한 바람이 불던 그녀의 얼굴에 난데없는 웃음꽃이 피었다.

『내가 그동안 본 것 중 최고의 불꽃놀이였다. 고마워. 네 덕분에 나 뿐만 아니라 여기 모든 사람의 목숨을 건졌어. 고맙다. 우리의 영웅!』

모두의 환호성 속에서 나는 패리스를 바라보며 가벼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나는 누군가 쓰러지는 나를 떠받치는 것을 느끼며 이내 다시 정신을 잃었다.


제 6 장. 독왕(纛王)의 탄생.

핸돈 마이어 뒷골목 광장. 평소에 싸늘한 바람소리만이 들리는 황량한 곳이지만 그날 이후 난 어디에 있더라도 외로움따윈 느끼지 않았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이 그 엄청난 폭발을 본 이후 그 속에서 살아남은 내게 운이 좋았다고 말하지만 난 왜 그 속에서 살아날 수 있었는지 머리로는 몰라도 가슴으로 알고 있었다.
그날 들었던 그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나는 아직도 설명하지는 못하겠다. 어쩌면 독의 정령이 내게 말을 걸었을지도 모르고… 또 혹은 독이라고 하는 그 존재 자체가 말한 것일지도 모른다.
뭐가 되었든지간에 내게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날 이후 난 내가 언제 어느 때에도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에 그 어떤 것도 부럽지 않았기 때문이다. 광기에 가깝던 독에 대한 집착도 사라졌다. 여전히 난 독을 사용하지만 이전과는 다른 느낌이다.
그냥 보면 즐겁고 보면 뿌듯하다. 아마 이런 기분을 느끼는 건 세상에서 나 혼자일 것이다....

『여어 반갑군 잘... 지내나? 친구?』

누굴까? 아마 그 현장에 있던 사람 중 하나가 아닐까? 누구인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누구에게라도 웃어보이고 싶다. 요즘의 난 계속 이런 기분이다.

『아 그래. 나도 반가워. 그쪽도 잘 지내?』

상대편이 갑자기 뚱한 표정을 짓는다. 왜 저럴까? 뭐... 상관없지. 난 그런 그를 뒤로 하고 걸어갔다. 그러자 상대편의 조금은 기분좋은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 듣던 얘기랑 이미지가 틀린데 그래? 하핫. . 뭐가 어찌됐던 만나서 반가웠어. 독왕』
『독왕?』
『어라? 모르고 있었어? 지난번 네가 패리스를 구한 이후로 다들 널 독왕이라고 불러! 그 엄청난 독안개에는 패리스도 찬사를 아끼지 않더군 널 따라 독연구에 매진하는 뒷골목 녀석들도 부지기수로 늘고 있다구 하하 유명인이 되었군. 축하한다구 독왕!』

그 사내가 사라진 후 난 그자리에 서서 멍하니 읇조리고 있었다. 독왕....독왕... 참 근사한 별명이다. 내게 있어 최고의 찬사일 것이다. 그리고 분명 내 오랜 친구도 기뻐해 주겠지.
그렇지? . . . . 독왕 . . .

'고대 던전 : 빌마르크, 제국 실험장' 의 이야기
   * 과거에 데 로스 제국은 빌마르크 실험장에서 신병기 개발을 위하여 전이를 일으키는 실험을
      한다. 실험은 성공적이었지만 부작용도 발생했다. 실험의 부작용으로 빌마르크 실험장
      주변의 몬스터들이 돌연변이화되고, 데 로스 제국에서는 돌연변이 몬스터에 둘러싸여
      고립된 빌마르크 제국 실험장의 몬스터 퇴치를 의뢰한다.



[고대던전]제국의 첩자





[고대던전]빌마르크 제국 실험장으로





빌마르크 제국 실험장을 클리어하기



이…이곳은? 이럴수가… 분명히 그때의 그곳이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인지 모습은 많이 변했지만 분명히… '빌마르크'가 분명해.
운명은 나를 또 다시 이곳으로 인도했단 말인가…



<퀘스트 완료>
어때? 가보았나?




빌마르크. 과연 제국은 이곳에서 어떤 실험을 했던 것일까. 정말로 그란플로리스의 대화재는 제국의 실험장이 폭발했기 때문이란 말인가. 그리고 또한가지 소문대로 이곳에서 무언가 실험을 하도록 한 인물이 아이리스라는 것이 사실일까. 테라, 즉 마계에서만 난다는 테라나이트가 소문의 신빙성을 더해주는 가운데, 결국 확실하게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구나..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엔피시 대사집 - 구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