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2월 29일 목요일

카르텔, 그들을 말하다

카르텔, 그들을 말하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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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카르텔'이라 일컫는 무법자들의 집단은 초기와 현재의 모습이 매우 이질적이다. 초기의 그들은 지금처럼 조직적인 체계를 갖추지 못했으며, 그저 힘깨나 쓰는 한량들의 모임에 가까웠다.
혈기를 주체할 수 없어 행패를 부리고 술에 취해 총을 마구 쏘아대는 그런 구제불능의 폭력배가 바로 그들이었다.
카르텔이라는 일반명사가 이들을 지칭하는 고유명사로 인식되기 시작한 것은 불과 10년 안팎의 일이다. 그러나 조짐은 훨씬 전부터 있었다.
약 20년 전 ‘에돈의 형제단’을 이끌던 엔조 시포와 모래바람의 베릭트라는 두 젊은 남자가 있었다. 이들은 당시 무법지대에서 끗발을 날리던 총잡이였으며, 비교적 평화를 존중하였기에 주민의 지지를 받았다.
물론 적에게 자비를 베풀지는 않았다. 신사적이면서도 냉혹한 모습은 상당히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으로 추측한다.
하지만 개인의 매력만으로 지금의 카르텔이 성립되었을 거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기본적으로 무법자는 자신의 개성과 자유를 억압받는 것을 싫어하는 부류다. 소규모 집단이라면 몰라도 온갖 규율로 통제하는 군대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토록 철저한 개인주의자들이 어떻게 세력을 규합하여 덩치를 불려갔을까? 왜 군대처럼 치밀한 조직을 이루었을까?
이들을 이해하려면 우선 웨스피스, 통칭 무법지대 사람들의 뼛속 깊은 열등감과 분노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한다.
무법지대는 척박한 땅으로, 예로부터 죄인들이 강제 이주된 곳이다. 엄한 정책 탓에 그들의 후손들도 나오지 못 하고 대를 이어 살게 되었으며, 100년 전까지도 이 제도는 꾸준히 유지되고 있었다.
그러나 차별제도가 폐지되어 거주 이전의 자유가 부여되었음에도 무법지대 출신이 정상적인 사회 구조 속에 들어가는 것은 여전히 힘들다. 그들에게는 낙오자의 낙인이 찍혀 있으며, 사회는 그들을 거부한다.
그렇기에 무법지대에서 태어나 입대하여 황도로 이동한 잭터 에를록스 준장이 그렇게나 주목을 받았던 것이다. 최고 사제 벨드런 님의 무법지대 출신 기용 정책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가 된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중략)…바다를 건너간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억양이나 말투에서 차이가 나기 때문에 금방 들통이 나며, 차별을 견디지 못해 돌아오거나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러기에 밖으로 나오려는 생각을 하지 못 한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면서 무법지대의 주민들은 ‘정상적인 사회’에 속하고 싶은 마음과 자신들을 거절하는 사회를 거부하는 마음을 함께 갖게 되었다. 그러나 많은 정치적인 이유로 그들을 포용하는 정책은 아직도 걸음마 단계다.
무법지대의 사람들은 좌절했고, 분노를 술과 폭력으로써 풀었다. 그렇게 무의미한 파괴와 자포자기의 삶을 살아가던 그들에게 어느 날 갑자기 의문이 떠올랐다.
‘왜 우리만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당연한 불만이지만 지금의 우리에게는 달갑지 않은 물음이.



카르텔, 그들을 말하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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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우리의 시선을 에돈의 형제단으로 다시 옮겨보자. 20년 전까지만 해도 무법지대에는 카르텔이라 부를 만한 통합적인 조직, 즉 무법자 카르텔은 아직 생겨나지 않았다.
그저 크고 작은 수많은 세력이 서로의 깃발을 걸고 싸우고 다투고 죽이고 있었을 뿐이다. 누구도 이들을 하나로 뭉칠 생각을 하지 못했을 때였다.
그러나 누군가 시작한 작은 의문은 점점 덩치를 불려 마침내 무법자들까지 움직이게 만들었다. 폭력에 얼룩진 일상을 바꾸려는 자, 혼란한 세상에서 세력을 키우려는 자, 그저 싸움이 좋아서 끼어든 자…
각자 목적은 달랐지만 모두가 들고 일어섰다. 그야말로 폭풍의 시대였다.
어느 때보다 치열한 전투가 곳곳에서 벌어졌다. 싸울 힘이 없는 주민들은 차별을 감수하고 바다를 건넜다. 하지만 그 수는 얼마 되지 않는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그들의 유전자 속에 박힌 분노는 엄청났고, 그 폭발적인 에너지를 서로에게 쏟아냈다. 에돈의 형제단은 치열한 생존 경쟁을 이기지 못한 약소 조직을 흡수하며 덩치를 불려가고 있었다. 에를록스 준장은 당시를 이렇게 회상한다.
"온갖 심각한 대의를 내세운 다른 군소집단과는 달리 에돈의 형제단은 ‘로망’이라는 독특한 기치를 내걸었다. 영리한 작전이었다.
웨스피스군은 반역을 일으킬지도 모르는 다른 조직에 신경을 쏟았다. ‘유치한 놀이’를 하는 그들을 감시할 여력이 없었다.
성미에 맞지 않는 거창한 대의에 질린 무법자들은 자신들의 본래 삶과 가장 가까운 에돈의 형제단을 도피처로 삼았다. 또한 맹렬한 투쟁 속에서 살아남을 자신이 없는 조직은 그들과 동맹을 맺길 원했다.
세력은 계속 커져갔고, 다른 조직들이 이들을 위협이라 느꼈을 때는 너무 늦었다."
리더인 시포는 용병술에 뛰어났다. 스스로 2인자를 자처했던 베릭트는 다소 독단적인 면이 있었지만 강렬한 카리스마로 지지를 받았다. 이들의 투톱 체계는 상당히 오랫동안 이어졌다.
초기에 시포가 원했던 것은 베릭트와 마찬가지로 낭만적인 삶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세력이 커져가면서 목표는 점점 바뀌었고, 당시 유명한 용병단이었던 ‘란제루스의 개’를 흡수하면서 그의 야심은 온 나라를 대상으로 삼게 되었다.
란제루스의 개의 리더인 란제루스는 시포의 오른팔이 되었고 뼛속까지 낭만주의자였던 베릭트는 세력의 재편에서 제외되었다. 시포가 10여 년만에 친구를 내친 것이다.
그러나 베릭트는 시포를 계속 지지하며 에돈의 형제단을 원래 모습으로 돌려놓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변화를 막지는 못했고, 홀로 탈퇴하게 된다.



카르텔, 그들을 말하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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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이의 혼란을 방지하기 위하여 지금까지 카르텔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알다시피 카르텔의 본뜻은 여러 조직의 담합을 말한다.
여러 조직과 손을 잡은 에돈의 형제단은 시포가 대표자인 무법자 카르텔이며, 다른 무법자 카르텔 또한 존재했다. 하지만 베릭트의 탈퇴를 기점으로 하여 급격한 팽창을 거듭한 에돈의 형제단은 마침내 무법지대의 유일무이한 카르텔이 되었다.
역설적이게도, 시포와 함께 에돈의 형제단을 만든 베릭트의 탈퇴가 카르텔의 탄생과 맞물린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때를 카르텔 탄생으로 삼아 10년이 지나 현재에 이른다. 단순한 무법자 집단이었던 카르텔은 군대처럼 체계를 갖추었으며, 뛰어난 군사 기술력을 자랑하고 있다.
물론 세븐 샤즈를 중심으로 하는 황도의 기술과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군의 체계를 따라오지는 못하지만 실전을 거듭하며 발전하고 있는 그들의 모습은 섬뜩할 지경이다.
지식인들 사이에서는 이미 그들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소수의 의견으로, 부족한 자원으로 인해 자멸할 것이라는 낙관론이 대다수의 의견이다.
무법지대의 열악한 상황을 생각하면 그들의 말이 무조건 틀렸다고 할 수는 없다. 더구나 거대화된 카르텔의 횡포는 이미 주민들의 거센 반발을 받고 있다. 그럼 우리는 무법지대의 ‘자정능력’을 믿고 기대해도 좋은 것일까?
세븐 샤즈의 일원이며 천계 최고의 과학자이자 갈라하 사막을 연구하기 위해 무법지대를 자주 방문한 지젤 로건 박사는 필자의 질문에 확신을 담아 대답했다.
"웨스피스 섬에서 카르텔이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현지 주민의 말을 들어보면 내부 갈등이 심하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도 그랬다. 사실 물자가 부족한 그들로서는 당연한 일이다.
조직 생활의 기본은 자신의 자유를 제한하는 규칙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법을 무시하는 무법자들이 그 억압을 오래 버틸 거라고 생각할 수 없다. 천성적으로 버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글을 쓰기 전부터 필자와 여러 차례 인터뷰 자리를 가진 에를록스 준장은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혹독한 환경에서 승리한 카르텔에게는 강한 원동력이 내재되어 있다. 하나는 천계 사회에 대한 불만이고, 하나는 카르텔에 속함으로써 자유를 빼앗긴 것에 대한 불만이다.
그리고 시포는 조직원의 불만을 어떻게 해결하면 좋을지 잘 알고 있다. 웨스피스의 평정이 끝나면 머지않아 외부로 총구를 향할 것이다.
크든 작든 피해는 나올 것이다. 어떻게 대비를 하여 때에 맞게 대응을 하느냐가 중요한 관건이 될 것이다."
무법지대에서 일으킨 반란이 그 동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들 대부분은 고질적인 문제인 자원 부족을 해결하지 못하여 크게 성장하지 못했고, 군에 의해 와해되었다.
카르텔 낙관론자가 아무 근거도 없이 시간 해결해 줄 것이라 예상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필자를 비롯한 비관론자가 보기에 카르텔의 성장은 심상치 않다.
걱정도 팔자라는 말이 있지만 유비무환이라는 말도 있다. 슬슬 대처를 강구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기 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고 움직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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