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기록
<기록1>
미를 따르는 신도의 첫 번째 기록
상황은 순식간에 변했다.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을 향한 미의 여신의 믿음이
의심으로 변하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나르시스를 잃어버린 여신이 가졌던 아름다움의 기준은 바뀌기 시작했고,
극단적으로 외적인 아름다움만 추구하게 되었다.
아름다움의 기준은 수선화처럼 수수한 꽃의 내면이 아닌,
화려하게 빛나는 황금으로 변했고, 그를 따르는 신도들도 점점 변해갔다.
이윽고, 변한 자신을 따르지 않는 이들이 나르시스를 숨긴 자들이라 생각한 미의 여신은 그들에게 은총이라 불리는 저주를 내리게 되었다.
우리 일족은 나르시스를 찾기위해 잠시 미의 여신을 떠날 것이다.
자기 자신을 되찾은 미의 여신이, 다시 진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길 바라며.
다만 걱정이다. 다시 나르시스를 찾아 미의 여신에게 돌려준다고 한들, 미의 여신이 원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올 수 있을까?
긴 여정이 될 것 같지만, 우리 일족은 끝까지 미의 여신을 믿고 따를 것이다.
그 길이, 세상에서 가장 고되고 불운한 길이 될지라도.
<기록2>

음, 이건 알아볼 수가 없는 기록이야.
<기록3>
훼손이 심한 것 같아요. 읽을 수가 없군요.
<기록4>
미를 따르는 신도의 두 번째 기록
본래 미의 여신의 나르시스는 누구나 쉽게 다가갈 수 있는 곳에 있었다.
그것은 신이 자신을 온전히 드러낸, 유일무이한 광경이었으며,
그만큼 인간들을 믿는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사람들 역시 미의 여신 그 자체인 그 작은 꽃을 소중히 바라보고 기도를 올리곤 했다.
솔직하고 투명한 내면, 자신다움을 찾는 것.
나르시스는 미의 여신 베누스를 상징했으며, 베누스는 그런 아름다움을 상징했다.
누군가가 그 한 송이 꽃을 꺾어가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곳에는 그저 오행이 뒤틀린 마법의 흔적만이 남아 있었고,
인간의 소행이라는 것만 분명했다.
그렇게 누구보다 자애롭고 아름다웠던 미의 여신은
슬픔에 빠졌고,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기록5>
미를 따르는 신도의 세 번째 기록
신도들은 최근 미의 여신전을 방문한 모든 이들을 조사했다.
그리고 최근 유독 방문을 많이 한 사람을 발견했다.
그 남자는 따로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후드를 깊게 눌러쓰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제대로 본 사람조차 없었다.
하지만 이것 외에 그가 누구인지,
정말 그가 나르시스를 훔쳐간 사람인지 조차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범인이 맞다고 해도, 의문은 남는다.
도대체 어떻게 신의 영혼이나 다름없는 나르시스를 신에게서 감출 수 있었을까?
신을 속이는 것이,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일일까?
대마법사 마이어와 같은 사람이 아니라면...
......
신은 여전히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고 있었다.
가끔, 슬픔에 가득찬, 그리고 생명이 닳는 듯한 울음 소리만이 들려올 뿐이다.
아름다움이 가득했던 신전은, 점점 적막해지고 있었고,
나르시스를 되찾지 못한다면 미의 여신은 이대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기록6>
미를 따르는 신도의 네 번째 기록
누가, 왜 나르시스를 노렸는지에 대해서 긴 토론이 이어졌다.
나르시스는 미의 여신의 상징.
미의 여신은 그 꽃을 바탕으로 아름다움을 규정할 뿐이다.
신의 본질이라는 거창한 이름과는 다르게, 정작 그 꽃 자체에는 아무런 힘이 없다.
그것은 오직 신에게만 영향을 줄 수 있다.
신을 저리도 슬픔에 빠뜨리고, 무력하게 만드는 것을 본다면,
신에 한정해서는 강력한 힘을 가진 것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게 그것을 가져간 이는 처음부터 힘이 아닌, 신을 노렸다는 결론이 나왔다.
어째서 신을 노리는가?
선계의 신들은 언제나 자애로웠으며, 포근했고, 실수를 인정해주었기에
선계는 오랜 평화만이 가득했었다.
그렇기에 이 초유의 사태에 대응할 방법을 아는 이는 아무도 없다.
<기록7>
미를 따르는 신도의 다섯 번째 기록
먼저 떠난 이들이 아직 나르시스를 찾지 못했고,
그 사이 미의 여신을 따르는 신도는 극단적으로 줄어들었다.
미의 여신은 점점 힘을 잃었고, 그만큼 더 피폐해졌다.
더 자신을 방어하고, 치장하는데만 신경썼고,
자신의 심기를 거스르는 자들에게는 저주와 같은 은총을 내릴 뿐이다.
자신의 본질을 잃은 신이, 사라지지 않기 위해 또 다른 신으로 거듭나려는 것처럼,
이전의 모습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악한 모습이었다.
은총을 받은 이들의 그 흉측한 모습은, 지금 미의 여신의 마음을 보여주는 듯 했다.
그렇게 수많은 이들이 지금 감옥과도 같은 베히모스의 붉은 뱃속으로 쫓겨났다.
그곳은 마치 죽어서도 빠져나갈 수 없는 피의 감옥과도 같다.
<기록8>
미를 따르는 신도의 마지막 기록
미의 여신은 선계를 버리고 공해 아래로 떠났다.
미의 여신전을 품은 이 거대한 베히모스는 더 이상 공해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이곳은 이제, 그 악의 순환조차도 멈춘 채, 은총을 받은 헌터들만이 거니는 곳이 되었다.
떠나간 일족이 나르시스를 되찾을 때까지, 우리는 이 감옥에 갇힐 것이다.
미처 죽지 못한 자는 스스로 죽지도 못한 채 영겁의 세월을 살아갈 것이며.
이곳을 떠나려는 자는, 거울을 지키는 거인에게 목숨을 잃고
그 영혼은 영혼이 잠긴 샘에 영원히 머무르게 되겠지.
미의 여신전은 완전히 잠들었다. 아니, 죽었다.
그리고 영원히 잊혀질 것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