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해천 (2)

거짓의 베리디쿠스
성인은 제단 위에 선다.
수백에 달하는 신도들의 시선이 올곧게 그를 향했다.

레미디오스께서는 우리에게 빛과 생명을 내리셨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마땅히 그 빛을 따라 세상의 어둠을 밝혀야 합니다.
우리의 의지로... 정의를 실현해야 합니다.

군중 속에서 작은 속삭임이 일었다.
걱정과 공포, 작은 희망, 그리고 무거운 기대가 섞인 속삭임이.

진리는 그것을 보는 자의 눈에 있으니,
형제들이여, 낙담하지 마십시오.
이 어둠 또한 레미디오스께서 예비하신 길의 일부입니다.

그는 며칠째 잠들지 못했다.
그의 기도는 공허한 메아리가 되어 돌아올 뿐이었다.
그는 신이 침묵하고 있음을, 어쩌면 이미 그들에게 등을 돌렸을지도 모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레미디오스께서는 우리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다만 더 큰 시련을 통해, 우리의 믿음이 진정한 광휘로 거듭나기를 시험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 희망의 끝에서 무너져가는 이들로부터 등을 돌릴 수 없었다.

그러니 우리는, 끝까지 시험에 맞서 광휘를 향한 우리의 믿음을 증명해야 합니다.
제가 가장 앞에 서 길을 열겠습니다.
두려워 마십시오!

그렇게 성인은 희망을 퍼트렸다.
희망이라는 이름의 가장 감미로운 거짓을.


해방된 비올렌티아
베리디쿠스.
정말 기나긴 여정이었어요.
당신이 없었다면, 저는 과업의 문턱에서 발길을 돌렸어야만 했겠죠.

단 한 걸음, 정말 딱 한 발짝만 더 나아갈 마음을 먹으면...
비로소, 천상이겠군요.
영원한 안식이, 영광의 빛이 보여요.
저곳이라면 지상의 모든 슬픔과 영영 헤어질 수 있겠죠.
머뭇거리는 것이 아니에요. 다만...

...이제야 알겠어요.
무엇이 저로 하여금 당신을 따라 이곳까지 걸음하게 했는지,
무엇이 제 마음을 옭아매고 있었는지.

높이 서니, 비로소 보여요.
따스한 천상의 빛 아래 더욱 선명히 드러나는
이 세계의 고통이.
어둡고 혼란스러운 지상이, 아직 돌보아야 할 상처받은 이들이.

저는 도무지 이 모든 아픔을 두고 볼 수가 없어요.
빛의 길을 알았으니, 저 아래의 생명들이 그 길을 걷고자 한다면
저는 제 모든 것을 바쳐서라도 그들의 고통을 힘닿는 데까지 감싸안겠어요.

아무 대가 없는 헌신이라 하여도 괜찮아요.
이것이 제가 선택한 빛의 길이자,
제 해방이니까요.


무관심한 카리타
더럽혀진 종탑의 계단을 타고 감도는 먼지 냄새와 희미한 녹내.
기껍지도 역하지도 않은, 이제는 그저 익숙해졌을 뿐인 향을 느끼며 카리타는 고개를 들었다.
섬뜩한 비명, 발톱으로 돌을 긁는 소리.
다시금 사방에서 종말이 짓쳐들어오리라는 예고가 울리고 있었다.

"...귀찮게 됐네."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흉측하게 뒤틀린 종말의 피조물이 종탑으로 뛰쳐든다.
카리타는 놀라지도 물러서지도 않았다.
다음 순간 신성력에 감싸인 손이 흔들림 없이 뻗어나가고,
둔탁한 소리와 함께 괴물은 종탑 아래 아득한 어둠 속으로 나가떨어진다.

그 뒤로도 꼬리에 꼬리를 물고 괴물들이 종탑으로 기어올랐다.
턱을 꿰뚫는 수도, 복부에 꽂히는 주먹, 목을 꺾는 간결한 움직임.
그러나 그 안에 분노는 없었다.
단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이었으므로.

"지킨다는 건 뭘까?"

들을 이도 답할 이도 없는 질문이 종소리 대신 메아리쳤다.
결론은 나지 않았다. 정답은 여전히 없었다.
주위는 어느새 고요해져 있었다.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곰방대를 꺼내어 들고는 난간에 기댔다.
희뿌연 연기가 녹슬은 종을 넘어 빛 한 점 없는 검보랏빛 하늘 위로 흩어지는 것을,
홀로 서서 한참 지켜보며.


추락한 크리테스
흔들림 없는 질서 아래 이단을 심판하라
광휘를 부정하는 자, 광휘의 뜻으로 쓰인 경전을 따르지 않는 자, 더는 빛을 추종하는 무리 안에 존재할 수 없나니
이단의 낙인을 찍고 광휘로부터 쫓아내어 홀로 길 걷게 하라

다만 하나,
생명을 빼앗지 말지어다.

다만 둘,
참회하여 뉘우치는 자마저 내쫓지 말지어다.

그리고 셋
길 잃어 헤매이다 다시금 광휘를 깨달아 그 품 안으로 돌아오려는 자
언제고 다시 광휘의 성에 발 들일 수 있게 할지어다.

"...잘 따르고 있습니까, 크리테스?"

심판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 피처럼 타오르는 열정이 두 눈을 채우다 못해 흘러내리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진실을 알지 못해 거짓된 이단의 길을 걸으려는 형제님에게는 어떤 판결을 내려야 합니까?"

진실을 알려주어야지요.

"진실..."

예, 진실을.
온 세상을 덮는 절대적인 종말 아래에서 보잘것없는 이름을 아무리 불러 보았자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거짓된 신을 향한 맹신이, 그러한 믿음을 품은 자의 존재 자체가 씻을 수 없는 죄임을.

진실을 보지 못하는 모두가 이단이니,
성서로써 하여금 그들에게 고통 너머의 진정한 종말을 보이고
채찍으로써 하여금 그들이 진실된 길을 걷도록 내몰으십시오.

그리하여 당신의 심판 아래 거짓된 모든 이단들이 진실에 닿게끔.


배교자의 성
빛의 추종자들이 머물러 한때 광휘의 성이라 불리던 곳.
그 거대한 규모가 레미디오스를 향한 신앙의 크기를 짐작케 한다.
세 개의 거대한 종탑, 그리고 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제단에 성화를 올리면,
레미디오스가 찬란한 광휘와 함께 계시로써 화답하곤 했다.
그러나 지금은 빛의 추종자들 중 그 누구도 광휘를 바라며 기도를 올리지 않는다.


신을 버린 광장
레미디오스를 따르는 빛의 추종자들이 모이는 곳, 광휘의 성 앞에 있던 마을.
본래는 따스한 빛과 생명의 기운이 가득해 활기가 넘치는 마을이었지만,
이제는 더 이상 빛도 생명도 없는, 버려진 땅에 불과하다.



광휘를 향한 길


광휘의 성으로 향해 주겠나, 모험가?
별마로에 종말이 실체를 드러내기 전, 미카엘라가 완전히 준비되어야 하네.
하나의 온전한 성자로서뿐만 아니라, 사도의 힘까지 다룰 수 있는 존재로서 말일세.
그러니 미카엘라가 무너지지 않도록, 혹여 무너지더라도 다시금 성자로서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우리가 그를 도와야 하네.
미카엘라는 자네에게 부탁하지. 나는 그 사이에 필요한 준비를 할 생각일세. 그것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신의 답을 구하는 미카엘라를 돕기

(해당 퀘스트를 진행하지 않더라도 콘텐츠 플레이가 가능합니다.)



모험가님! 이곳에 와 주셨다는 것은...
별거북 대서고의 일은 해결되었나요?
그렇군요. 마이어 님께서 깨어나시다니... 정말 다행입니다. 한결 마음을 놓을 수 있겠어요.
마이어 님께서 미카엘라 님을 도우라 하셨다는 말씀이시군요. 미카엘라 님은 성문 근처에 계십니다.
저희는 광휘의 성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제단에서 신의 목소리를 듣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 전에 말씀드려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이미 보셨듯, 레미디오스 님을 믿는 신도분들께서는 이미 모두 최후의 성지로 몸을 피하셨어요.
이제 광휘의 성에는, 믿음을 저버리고 종말에 몸을 의탁한 배교자들... 그리고, 두 성인만이 남아 계십니다.
배교자들은 왜 그런 선택을 내리게 됐지? / 배교자들은 왜 그런 선택을 내리게 됐죠?
광휘의 성에 남아 있다는 두 성인은 누구지? / 광휘의 성에 남아 있다는 두 성인은 누구죠?
직접 확인하면 되겠지. 안내를 부탁해, 엘리아. / 직접 확인하면 되겠죠. 안내를 부탁해요, 엘리아.



......
이 안에는 이미 빛 한 점 없이 종말만이 가득한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 누군가가, 헛되이 걸음을 옮기고 있구나.
베리디쿠스!
강대한 신성력을 가진 누군가가 성을 향해 다가오고 있어요. 당신도 느꼈죠?
......
레미디오스 님께서 이번에야말로 응답을 주신 것일지도 몰라요.
그러니까, 베리디쿠스...
그런다 한들 달라지는 것이 있습니까, 비올렌티아.
그 누구라도 우리를, 이곳을 뒤덮은 종말을 몰아낼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굳건한 믿음이라도,
균열이 간 자리에 심연이 잠식하는 건 순식간입니다.
그러니 기적이 아닌 이상 다시금 이 성에 광휘가 내릴 일은 없습니다.
우리야말로 가장 잘 알고 있는 사실 아닙니까.
...제가 일으킬 수 없던 기적을, 그 누군가가 일으킬지도 모르죠.
제단에 성화를 올릴 자격이 아직 남아 있는 분께서 오셨다면 말이에요.
그러니까... 전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제 눈으로 봐야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베리디쿠스. 확인을 마치면...
당신이 있는 곳으로, 
반드시 돌아올게요.
레미디오스시여.
이번에는 입을 열어 목소리를 내리시겠습니까.
혹은, 그저...
따르라. 버텨라. 그저, 
믿어라.
아직도, 당신께서 전하실 뜻이란 오로지 그뿐입니까.
그렇다면...
저는 그저 이 수많은 생명을 짊어져 보겠습니다.
버틸 수 있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로페즈 님의 신호... 바야흐로, 본격적으로 움직일 시간이로군요.
배교자들이 받아들인 종말의 힘 역시, 머지않아 충분히 무르익을 테니...
종말을 향해, 모두가 걸음을 뗄 시간입니다.



마이어가 깨어났군요.
당신을 가장 먼저 이곳으로 인도했다는 것은, 광휘의 성이 그만큼 중요하다 판단한 것이겠지요.
그렇다면 반드시 이곳을 구원해야 합니다. 
레미디오스 님을 따르는 형제님들은 모두 최후의 성지로 대피하셨으니, 이곳에 계시는 분들은...
이미 오래전 빛을 저버린 분들입니다.
엘리아 님이시군요.
진작에 최후의 성지로 떠나신 줄 알았는데. 이곳에는 왜 돌아오신 겁니까?
이곳은 이제, 배교자의 성일 뿐입니다.
한때, 빛이 비치던 때에는 광휘의 성이라는 이름으로 불렸었습니다만... 이제는 아니지요.
레미디오스 님께서는 저희를 버리신 게 아닙니다.
그분께선 분명, 아직 우리를 살피고 계실 겁니다.
자매님, 그렇다면 어찌하여 우리는 대답을 들을 수 없었던 것입니까?
우리는 그분께 뜻을 묻는 것이 아니라, 그분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레미디오스 님께서 저희의 믿음에 보답하실 테니까요.
주위를 보십시오, 자매님.
저 위 별마로를 넘어, 빛이 머무르던 이 성을 지나... 천해천마저 온통 뒤덮은 이 종말의 힘을요.
이것이 레미디오스가 우리에게 돌려준 보답입니까?
레미디오스는 이 아래, 우리를 향해 시선 한 번 줄 마음조차 없이 천상에만 머무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아니라면, 종말의 힘을 막을 방도가 없어 이미 무력히 두 손을 놓은 것이겠지요.
레미디오스가 침묵하니 아직 그를 믿고 따르는 분 중 그 누구라도 답해 주십시오. 어느 쪽이 맞습니까?
......
역시 광휘로부터도, 그 광휘를 따르는 이들로부터도 마땅한 답은 나오지 않는군요.
허나 어느 쪽이 맞는다 하여도 그로 하여금 저희는 지금과 같이 믿음을 잃었을 것입니다.
저희는 당신들을 막겠습니다.
그것이 저희가 받은 새로운 답, 종말로부터의 계시입니다.



...소용없을 겁니다.
이미 믿음을 잃어 배교자가 된 이들이... 저 성 안에 가득 차 있습니다.
한때 같은 신의 자녀들이었던 이들을 헤치며 성 안을 나아가시다 보면...
어느 순간에든, 당신 역시... 저희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시겠지요.
이제는 우리가 신을 버려야 할 때라는 결론 말입니다.
저는 아직 믿고 있습니다.
레미디오스 님께서 언제고 저희를 향해, 저 안의 형제님들을 향해 손을 내밀어 주실 것을요.
설령 그렇다 해도 이제는 너무 늦었습니다. 소용... 없다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이미... 저 안의 모든 이들은, 다가오는 종말에... 잠식되어...
......
...성문에 들어서는 순간부터는 훨씬 본격적인 싸움을 준비해야겠군요.
정말... 정말로 내키지 않는 가정이지만, 어쩌면 두 성인 역시 믿음이 흔들리고 계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성자님, 모험가님. 가죠.
레미디오스시여.
당신께서 품으신 뜻은 무엇입니까?
제가 걷는 이 길이, 
진실로 옳은 길입니까?



모험가님, 성자님. 이곳이 성의 경계입니다.
아마 이 안에도 저와 같은 빛의 추종자들이...
아니, 아까와 같이, 빛을 저버린 배교자들이 있을 거예요.
더 지체할 순 없으니 안내를 부탁하지, 엘리아. / 더 지체할 순 없으니 안내를 부탁해요, 엘리아 님.

네, 모험가님.
엘리아. 당신이 있을 줄은 몰랐네요.
비올렌티아 님!
역시 아직 성을 지키고 계셨군요. 다행입니다.
내가 달리 어딜 갈 수 있겠어요.
최후의 성지에 계신 형제님들께서 비올렌티아 님과 베리디쿠스 님을 애타게 찾고 계십니다.
지금이라도 최후의 성지에 함께 가서, 천해천을...
최후의 성지에 간다 해도,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죠?
어쩌면 이미 너무 늦었을지도 몰라요, 엘리아.
어느 순간부터, 우리... 나와 베리디쿠스는 이전처럼 광휘의 힘을 쓸 수 없게 되었어요.
레미디오스 님께서 아무 응답도 내리시지 않게 된 후... 그분을 향한 우리의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 후로부터요.
그러니 지금은, 당신이 원하는 바가 무엇이든 간에 그걸 들어줄 수도 없겠지요.
그럼에도 제가 필요한가요?

<선택지1/2>
<선택지3>




추종자의 첫번째 기록
기나긴 과업의 길을 지나 별마로에 첫 발을 디뎠을 때,
레미디오스께서는 두 성인에게 빛을 맡기셨다.
그리하여 그들이 머무는 성은 광휘의 성으로 불렸다.
오랜 세월 동안 성은 변치 않았다.
그들은 우리의 믿음이었다.




추종자의 두번째 기록
한때 레미디오스의 두 성인은 그 누구보다 완전한 신앙을 지녔었다.
레미디오스께서 오래도록 침묵하자 그들은 답을 찾으려 했다.
허나 성화가 아무리 피어올라도 광휘는 제단을 되비추지 않았다.
베리디쿠스 님의 정의도 비올렌티아 님의 사랑도 화답받지 못했다.
곧 성의 누구도 성화를 피워올릴 수 없게 되었다.
그렇게 다른 모든 이들과 같이, 두 성인 역시 실패했다.



이곳은...

여기가 성문인가? / 여기가 성문인가요?
여긴 광휘의 문이라고 불리던 곳입니다.
문을 지나려면 성의 심판관, 크리테스 님에게 스스로의 믿음을 보여야 했었죠.
레미디오스 님을 얼마나 굳건히 믿고 있는지, 그럼으로써 얼마나 찬란한 광휘를 내릴 수 있을지.
하지만... 지금은 역광이 비쳐들고 있군요.
광휘의 성에 발을 들이려는 자여, 이단이 아님을 증명하라...
...종말이 아님을 증명하라...
...이 신성력은!
분명, 분명 레미디오스 님께서 보내신 구원의 사자시지요?
아닙니다, 저는...
겸양은 필요 없습니다!
이 종말의 힘으로부터, 제발 우리를 구해 주십시오!
그것이 레미디오스 님의 역할이 아닙니까!
우리는 언제까지 이 고통을 견뎌야 합니까?
......
어찌하여 침묵하십니까?
크리테스, 저희 역시 다른 형제님들께 도움을 구하러 온 겁니다.
종말을 막기 위해 빛의 추종자들이 가진 힘이 필요해요.
천해천 전체가 뜻을 모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신들께서 가지신 만큼의 크나큰 광휘로도 여전히 어찌할 도리가 없이...
종말의 힘은 점점 더 거세어지고 심연은 더욱 깊어질 뿐이군요...
......
조금만 시간을 주십시오.
저에게 기회를 주신다면, 제가 레미디오스 님께 답을 구하러...
그리하여 레미디오스께서 답을 내리신다면, 지금까지 저희는 단지 제대로 묻지 못해 이 고통을 버텨야 했던 것입니까?
믿음의 뿌리, 그 방향부터가 잘못되어 있던 것 아닙니까?
...그 어떤 믿음으로도 사지 말단에서부터 서서히 좀먹어 오는 종말을 뿌리칠 수가 없었습니다.
믿고 따르는 이조차 감쌀 수 없는 광휘를...
심연을 꿰뚫지 못하는 광휘를, 신이라 부르며 따라야 합니까?
이 입으로 저는 지금까지 수많은 이단을 규정했습니다.
이 손으로 저는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을 붙잡았고...
이 채찍으로... 저는 지금까지 수많은 누군가를 벌하여 왔습니다!
...그러니 누구든, 제발 답해 보십시오!
레미디오스 님께서... 어쩌면, 이 고통을, 종말의 힘을, 단죄할 수 없는 것이라면!
실은 내가 믿고 따르던 신이, 전능으로 하여금 진실된 신이 아니었더라면!
실은 이단을 규정하고 심판하던 내가 이단이었다면!
숭배의 대상이 될 자격조차 없는 이가 짜낸 그릇된 도리 아래 정의라 믿으며 행해 온 일들이, 단지 죄악에 불과했다면...
지금까지 그 이름 아래 살았던 저는 무엇이 되는 것입니까?
형제여. 그것은... 제가 답할 수 있는 질문이 아닙니다.
제가, 레미디오스 님께 물어 답을 구하겠습니다.
당신이, 이 성의 추종자들이 가지셨던 믿음을 좀 더 공고히 할 수 있도록요.
그리하면 우리는 종말을 몰아낼 수 있을 겁니다.
...믿음을 공고히 한 우리가... 종말을 몰아내는 것입니까?
우리가, 내가... 이 손으로....
...그렇다면 신으로부터 내려오는 구원은 없습니까?
신은 정녕 우리를 외면한 것입니까?
신은 부재합니까?
...혹여라도 신께서 우리의 시련에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판단하신다면, 우리는...
...우리의 믿음으로써 종말을 몰아내야 합니다.
거짓!
거짓!
거짓!
거짓도 기만도 비밀도 기약 없는 약속도, 이제 더 이상은 용납하지 않겠다!
그리하지 못한다면 틀림없이 이단을 품은 자이리니...
신의 이름 아래, 심판하겠다.
미안합니다, 형제여...



끝없는 고통을 맛보여 주겠다.
어찌하여 우리가 종말을 몰아낼 수 있다 말하는가?
레미디오스가 정말 우리를 굽어보고 있다 생각하는가?
거짓을 입에 담지 말라!
알량한 구원을 주장해 봐라.
네 믿음을 증명해라.
고통으로 진실을 이끌어내리라...
나는 보았다, 고통 너머의 진리를, 종말을!



그저 믿으라!
그저 따르라!
그저 인내하라!
심판의 날을 맞이하라!



레미디오스시여. 부디 당신의 종을...
...광휘의 품 속으로 인도하소서.
...광휘의 제단에 성화를 올리려면, 세 개의 종탑에 먼저 성화가 밝혀져 있어야 해요.
준비되셨다면, 종탑으로 계속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어쩌면, 그의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흔들렸습니다. 
아주 오래도록.
제 입으로 신을 버렸다 되뇌일 때까지요.
허나 없는 믿음을 만들어내서라도 저는 나아가야 했습니다.
성자님, 그 말씀은...
예. 저는 신을 버렸습니다.
수많은 일들을 직접 보고, 또 그에 대한 침묵마저도 함께 보았으니까요.
때로는 손을 써 없애야 할 악일 때도 있었고, 때로는 꾹 삼켜 감내해야 할 시련일 때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그 어떤 방법으로도 도저히 구원할 수 없는 누군가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 모든 것이 신의 뜻이라 생각하면... 저는 그분을 온전히 믿을 수만은 없었습니다.
이 역시 오래된 일입니다. 애시당초 온전한 믿음이라는 것이 실재하는지조차 알 수 없을 만큼요.
...다만 이곳을, 우리를 구하고 싶은 당장의 이 마음만은 진실입니다.
그렇기에 다시금 제 안에 남은 믿음을 끌어올려 보려 합니다.
......
그렇다면 저는, 성자님을 믿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추종자의 세번째 기록
우리는 너무 오래 기다렸고, 너무 오래 버텼다.
기약 없는 믿음에 균열이 가 빛이 들지 않는 곳에서부터 차츰 종말이 차오른다.
종말에 물든 자리에서부터 더 이상 광휘를 믿을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스스로 더 강한 길을 택해야 한다...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어지러운 글씨로 무언가 잔뜩 휘갈겨 쓰여 있다.)



오, 엘리아. 믿음을 간직한 채 최후의 성지로 열심히 달려간 줄 알았는데.
옆에 있는 이들을 여기까지 데려오느라 돌아왔니?
맞아요, 카리타.
눈부셔라! 귀한 손님이 여기까지 드셨군.
방금 들었겠지만, 나는 카리타야. 이 종탑을 지키고 있지. 그러다 보니 여태껏 남아 있게 됐네.
성자님이라. 이제 와서 신께서 누군가를 내려보내셨을 것 같진 않고...
그쪽의 성자님 역시, 왜 세상을 이 모양 이 꼴로 내버려두고 있나 신에게 물어보러 온 건가?
...예, 세상을... 저를 어째서 외면하는지 묻기 위해, 저 스스로를 구할 구원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왔습니다.
그분을 따르는 이들의 믿음을 공고히 하시고 더 큰 힘을 내려, 저희로써 하여금 종말을 막을 수 있도록 해 달라 청할 생각입니다.
그러니 성화를 밝히게 해 주십시오, 카리타.
저런, 어렵겠는걸? 내 역할은 이 종탑을 지키는 것이라서 말이지.
그러니까...
어쩔 수 없구나. 너도, 나도.



난 정답이 없는 문제가 싫어.
생각이 너무 많은가?
해야 하는 일일 뿐이야.
피해, 그게 네 역할이거든.



카리타, 내가 성화를 올리려 하는 것은
나의 신을 믿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분께서 구하면 답을 주시리라, 우리의 세계에 닥쳐온 위기를 해결하게끔 살펴주시리라...
제 스스로 그리 믿을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제 길을 열어 주세요.
...그림자 안에 무엇을 품었는진 모르겠지만, 아직 빛을 향하고자 한다면...
성자님, 당신은 성화를 피울 수 있을 거야.
내게 버림받으신 나의 신이시여.
당신의 뜻에 따라 저는 빛을 세상에 전하였습니다.
역시, 성화가 켜졌군요!
이대로 다른 두 종탑, 그리고 광휘의 제단에까지 성화를 켜 레미디오스 님께서 내려 주시는 답을 듣는다면...
비올렌티아 님과 베리디쿠스 님도 온전한 믿음으로 돌아와 저희를 도와주실 수 있을 겁니다.
다음 종탑은 가까이 있어요. 어서 가죠!



난 누가 와도 함부로 저기에 들어갈 수 없도록 지키는 역할을 맡았었는데 말이야...
함부로라는 건 누가 정하는 걸까?
성화를 피워낸 성자님 정도면 가능하려나?
아니면, 광휘의 성에서는 꽤 이름을 날리던 엘리아 자매님?
우리와 남을 규정하는 건 어디서부터 시작될까?
모든 게 무너진 이곳, 이 순간에서도...
누구를 들여보낼지, 누구를 막아설지.
그 기준은 아직 유효했을까?
어때, 복잡하지?
종탑을 지키며 종종 하던 고민이야.
그땐 늘, 이런 거 생각하지 않고 맡은 바 역할만 하면 된다는 게 결론이었지만.



후후... '믿고 싶다'니, 정말 성자다운 말이야.
안 그래, 엘리아 자매님?
...저는 성자님을 믿고 있어요.
정말로?
네.
......



성자님, 세상을 구하고 싶은 거야?
예.
같은 믿음을 지닌 분들은 물론이고 선계를, 아라드를, 그 위의 모든 이들을 구하려 합니다.
스스로가 짊어진 짐도 무거워 보이는데.
...예, 저는 신께 받은 사명을 여전히 짊어지고 있습니다.
가끔은 그 혼돈의 무게에 영영 익숙해질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 만큼 버겁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제가 세상을... 그분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이 세상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유일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과연 성자답군.
좋아.
광휘가 함께하기를 바라지.



엘리아가 기다리고 있는 모양이네.
이제 그만 가 봐, 모험가님.
우리의 길이 같은 곳으로 예비되어 있다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겠지.



이곳까지 오셨군요.
아직... 믿음을 잃지 않으신 채로.
약속드렸으니까요, 비올렌티아.
어떠셨나요. 모든 광휘가 사라지고 단지 종말만이 서서히 닥쳐오는 이 성에서...
한 점의 빛, 한 줄기의 희망이라도 찾으셨나요?
우리는 아직, 구원받을 수 있나요?

<정답 선택지>
<오답 선택지>



...진실한 믿음을 가진 자가 성스러운 빛을 밝히면, 광휘께서 응하시리니...
...저는 믿을 수 없어요.
믿을 수 없다니, 무엇을...



용서하세요, 저의 의심을.
용서하지 마세요, 제 절망을.
그림자를 숨기고 계시는군요.
어떻게든, 다시, 광휘를...



<오답 선택지>
<정답 선택지>



첫 번째 고해
더는 신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어요.
그저 기다려 주세요, 그저 버텨 주세요.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해 줄 수 있는 말이 없어요.
하지만 그 모든 말이 정작 제 믿음을 흔들어 온 말이라,
어느 말을 하려 해도 죄를 짓는 꼴이 됩니다.



(알 수 없는 기운이 날 끌어당기고 있어.)



돌아가는 길이 무너졌어.



광휘의 서
하늘의 문을 두드릴 성화의 불씨는 믿음의 손끝에서만 피어오르리라.
첫째로 빛을 세상에 퍼트리고
둘째로 기꺼이 자신을 바쳐 어둠을 비추고
셋째로 흔들리면서도 빛을 향해 걸어온 이만이 성화를 피우리니
그에 광휘가 화답하여 제단을 비추리라.



광휘의 서
하늘과 가장 가까이 맞닿아 세계를 굽어보는 광휘가 첫 번째 벽이 되리니
광휘의 뜻을 아는 이는 침묵하고,
광휘의 뜻을 그저 믿은 이는 타락하고,
광휘의 뜻에 멈춰선 이는 번민하리라.
광휘의 뜻에 비로소 의문을 품은 이는,
(다음 내용은 훼손되어 알아볼 수 없다.)



모험가님, 잠시만요!
제가 아는 사람이에요.
양연? 양연, 너 맞지?
광휘, 빛...
...엘리아?
양연!
정신을 차린 거야? 나야, 엘리아!
이상하네, 언제나 올곧게 광휘를 믿던 네가, 어째서 배교자들이 거니는 성에...
...양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아, 분명 어디 적어 두었는데. 꼭 너에게 알리고 싶은 좋은 소식이었거든.
검붉은 보라색의... 빛이 기억나.
분명 중천에서 취재했지. 녹스의 흔적을 좇아서.
약초꾼들을 만났어. 유쾌한 만남은 아니었지만, 정보를 물을 이가 많지 않아 어쩔 수 없었어.
...그러고 보니, 그곳엔 곧 아무도 없게 되었었지.
아, 그건 아무래도 상관없나...
천해천은... 선계는, 이 세계 전체는 어차피 종말에 뒤덮였으니...
우린 종말의 힘을 막을 방법을 찾고 있어.
그러면... 너도 곧,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야. 그러니 조금만...
......
양연, 뭘 하려고...
하하!
종말을 막아 보겠다고?
소용없어.
종말은 이미 이 세계의 목전에 있으니.
종말이, 이미 이세계의 목전에 있다...
서둘러야겠습니다.
......
이번이 세 개의 종탑 중 마지막이에요, 성자님. 이번에도 성화를 밝혀 주세요.
신이시여.
당신의 뜻에 따라 저는 지금 이곳에 있습니다.
마지막 종탑에까지 성화를 밝혔으니... 이제 제단으로 향할 차례입니다.



<오답 선택지>
<정답 선택지>



모험가님... 아까 그 힘, 분명 종말의 힘이었죠?
...결국 양연 역시 녹스와 마찬가지로 종말에 잠식되어 가고 있었군요.
백해, 이어서 중천... 선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심상찮다며 직접 알아보고, 녹스를 찾아 돌아오겠다고 나섰던 후로 소식이 끊겼었는데.
다른 사람들이 종말에 잠식되었듯이 양연 또한 이제는 돌이킬 수 없게 된 걸까요?
아니면, 종말을 몰아내면 양연 역시 괜찮아질 수 있을까요.
...제가 포기해서는 안 되겠죠. 양연도 제가 좌절하는 걸 보고 싶어하진 않을 테고요.
끝까지 시도하겠어요.
그 끝에 양연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단 한 가지만 남게 된다 하더라도.



두 번째 고해
그분의 음성이 들리지 않은 지 너무나도 오랜 시간이 흘렀어요.
당신이 말했죠, 베리디쿠스.
신께서는 이미 우리에게 등을 돌리셨다고.
처음에는 분노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두려웠어요.
하지만 이제는 가끔 당신의 말이 맞았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쩌면, 신은 이미...



마지막 고해
신은 우리를 버렸어요.
신도들은 이미 신을 저버린 지 오래예요.
베리디쿠스 역시, 오래도록 레미디오스 님을 기다렸어요.
그저 따르면서, 그저 믿으면서.
그러니 그 누구에게도 우리를 비난할 자격은 없어요.
꾸짖을 사람이 없어진다면, 죄는 더 이상 허물조차 아니게 되지요.
이제는 고해조차 할 필요가 없겠군요.



배교자의 기록
종말이 온다, 그럼으로써 새로운 구원이 내리리라.
종말이 온다.



저 제단에 마지막 성화를 올리면 됩니다.
부디, 성자님...
레미디오스시여.
이곳에 당신의 광휘를 내리소서.
진실로 당신을 믿으며 뜻을 구해 온 이들이 여기에 있습니다.
부디 광휘로써 화답하소서.
제발...

<오답 선택지>
<정답 선택지>
그러나 바라지 않으셨다 해도 저는 지금의 일을 후회하지 않겠습니다.
어쩌면 레미디오스께서는 다만 별마로를, 광휘의 성을 뒤덮은 종말을 내버려두신 것일지도 모르지요.
어쩌면 그간 스러져야 했던 모든 생명이... 그 희생들이 전부 그분의 뜻 안에 들어 있었을지도 모르고요.
어쩌면 이 모든 일은, 그분께서 구태여 직접 손대지 않으셔도 풀릴 수 있었던 매듭이었을 겁니다.
그러니 신의 뜻을 감히 속단하려 한 제가, 다른 모두가 어리석었을지도 모르고요.
하지만 비올렌티아가, 다른 모든 배교자들이 종말에 잠식되어 이리 숨을 거두는 것마저 그분께서 가지셨던 뜻 속에 들어 있다면,
후에 한없이 긴 세월 동안 신께 엎드려 용서를 구하는 일이 있더라도...
저는 그 생명들을 구원하겠습니다.
...종말의 힘이 거세게 움직이고 있군요.
이 방향이라면, 성에서 가장 깊은 곳에 있는 고해소입니다.
그곳으로 안내해 주십시오, 엘리아.



고해소는 죄를 지은 형제님들이 죄를 사함받고 다시금 진실로 광휘를 따를 수 있게끔 마련된 장소였어요.
다른 한 명의 성인, 베리디쿠스 님께서는 그곳에서 죄를 듣고, 형제님들이 참회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빛의 추종자들을 다시 정의로 이끄는 것이 그분의 기쁨이었습니다.
하지만 방금 그 종말의 힘으로 미루어 보아... 그분 역시, 이미 종말에 잠식되셨을지도 모르겠군요.
의식은 잃은 듯하지만... 비올렌티아의 기운이 안정을 되찾았습니다. 그러니 더는 이곳을 지킬 필요가 없겠지요.
당신의 걱정대로 베리디쿠스 역시 이미 종말에 잠식되었다면...
그의 생명을 이대로 지나칠 수는 없습니다.
서두르죠.



안 돼...
...베리디쿠스 님!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되돌릴 수 있어요!
성자님, 방법을...
성자님이라.
이미 한참을 늦으셨습니다.
따르던 말씀이 끊기고, 믿음에 균열이 가고, 결국은 스며드는 종말을 더 버틸 수 없게 된 지금에 와서야...
우리에게 희망을 말하려 하십니까.
레미디오스와 똑같은 말을 하시는군요.
그저 믿어라, 그저 따르라, 버텨라, 인내하라...
기꺼이 믿고 따르게끔 만드는 말은 누구도 해 주지 않고, 그 와중에도 종말과 그 피조물들이 성으로 짓쳐들어오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수없이 많은 형제들을 잃었습니다.
그 모든 생명의 빛이 꺼지는 꼴을 보면서도 레미디오스는 어떠한 손길조차 내밀지 않았습니다.
광휘로써 종말을 이길 수 없으니, 더 많은 목숨을 잃기 전에 우리는 손아귀 속 당장 쥘 수 있는 힘을...
종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성자님께서는 종말을 몰아내는 기적을 일으키실 수 있습니다, 베리디쿠스 님.
이미 비올렌티아 님을 종말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니 제발...
어째서!
어째서 그녀를 도로 그 절망 속으로 내몰으셨습니까?
 지금 종말 밖에 있는 것은 그럴싸한 절망뿐입니다.
간신히 함께 구원을 바라보게 되었거늘, 어째서...
그것이... 구원이자,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희망입니다...
희망이라.
어느 순간까지는 저 역시 비올렌티아와 마찬가지로 당신들이 말하는 그럴싸한 희망을 간직하고 있었습니다.
허나 수없이 많은 형제들을 잃던 중 그 어느 순간부터는, 자연히 어떠한 기대도 들지 않게 되었습니다.
무력히 형제들의 희생을 지켜보는 것만이, 그때의 제가 할 수 있는 전부였기 때문입니다.
오로지 종말만이 구원입니다.
제 선택을, 당장 희생되는 형제들을 구하려 내린 결정을 탓하고자 하신다면 탓하십시오.
그러나 그 원망을 견디지는 않으려 합니다.
이제는 그 원망마저...
능히 종말 속에 삼켜질 테니...



꺼져 버린 모든 빛에 애도를.
그저, 그저...
그럴싸한 가짜 희망을 말하지 마십시오.
빛바랜 광휘 아래, 마지막 정의를.



이것이 새로운 정의입니다.
버텨라, 따르라, 믿어라!
더는 거짓 구원을 믿고 버티지 않겠습니다.
종말이 곧 구원이니, 그저 따르십시오.



...구원하기에, 충분한 힘이라 생각했건만...
......
...늦었습니다.
비단 미카엘라 당신뿐만이 아니라, 당신들... 모두 다.
이미, 그들, 바니타스는 종말을...
제가 어떻게든 해결하겠습니다, 베리디쿠스.
이 순간에도... 레미디오스는 아무것도...
이 세상이 어찌 되든 간에, 상관없다는 듯 보일 뿐...
......
아무래도, 저는 이대로 그를 버린 채 돌아설 수가 없군요.
모험가.
저는 잠시 이곳에 머무르겠습니다.
아직 종말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형제님들이 계신다면, 그분들을 도우려 합니다.
물론 이곳에 멈춰서겠다는 뜻은 아닙니다.
저는 베리디쿠스에게, 비올렌티아에게 답을 주고 싶습니다.
카리타 자매님의 고뇌가, 크리테스 형제님의 죽음이 그분께서 품으신 뜻의 일부인지 알아내야겠습니다.
그리고, 지금 레미디오스 님께서는 어떤 생각으로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까지도.
어째서지? / 어째서죠?

그게 당신의 선택이라면, 알겠어. / 그게 당신의 선택이라면, 알겠어요.

저는... 궁금합니다.
그들이 견디다 지쳐 종말의 힘을 받아들인 것이... 신의 뜻 안에 포함되어 있었을까요?
아니면 그분께서는 그저 눈길 주고 싶은 곳에만 빛을 내리신 것일까요.
종말에 뒤덮인 이 순간조차도 정말 나아가야 할 곳을 향하는 것이 아니라 우군에게 칼을 들이미는 것이...
그분의 안배 중 하나였을까요?
하나의 믿음 아래에서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싸워야 했던 지난날이, 제게 겨누어지던 교단의 칼이,
그리고 오늘의 이 싸움마저 그분의 뜻이었다면...
......
성자님의 뜻이 진정 그렇다면... 이곳의 형제님들을 부탁드립니다.
지금 그분들을 구할 수 있는 이는 성자님뿐이세요.
저희는 우선, 최후의 성지로 돌아가 이곳의 상황을 알리는 게 좋겠습니다.
모험가.
수많은 이들에게, 수많은 상황에서 정답이 되었던 당신은 아십니까?
성화의 빛이 치솟는 마지막 순간까지도 아무 기색 없이 그저 침묵하셨던 신께서 끝끝내 마음을 돌리지 않으신다면...
저는 누구에게 무엇을 구해야 할까요.
...아닙니다.
스스로 답을 구해야겠지요.
설령, 그것이...
진정으로 나의 신을 버리고, 그분 대신 스스로 이 세계의 답이 되는 것이라 하여도.



부족해.
배교자들이 생각보다 너무 많이 살아남았어.
종말의 힘이... 아직도 부족해...
종말을 받아들인 이들이 움직이고 있으니 실로 머지않았구나.
첫째로 무정한 어둠이 빛 위에 내려앉고,
둘째로 쉼없는 분노가 안식을 끝내고,
셋째로 바라마지 않는 절망이 소망을 휩쓸고
넷째로 모두에게 잊힌 힘이 기억을 거두니...
마침내, 그에 비로소 종말이 도래하리라!



방금, 저쪽에서 종말의 힘이 움직인 것 같군. / 방금, 저쪽에서 종말의 힘이 움직인 것 같군요.

저 방향이라면... 역설의 미궁이군요.
엘리아 님, 모험가님! 최후의 성지로부터 온 전갈입니다.
역설의 미궁, 비틀린 도시에서 거대한 종말의 힘 감지, 모험가의 최우선 지원 요망.
천해천 전역에서 느껴질 만큼 엄청난 종말의 힘이었습니다.
지금 바로 역설의 미궁으로 향해 주십시오.



<퀘스트 완료>
최후의 성지에서도 방금의 이변을 바로 감지한 모양이군요.

<NEX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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